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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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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의 야간열차 | 다와다 요코 | 문학동네 결락과 불협화음으로 문학의 틀을 깨고 언어와 언어 사이의 경계를 걷는 작가 다와다 요코의 대표작 당신은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어둠을 가르며 어디론가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무수한 사람들을 마주한다. 그들은 당신에게 무언가를 건네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며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분명한 것은 없다. 오직 달리는 야간열차에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것이다. 익숙한 듯 낯선 세계를 향한 이 여정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까. 어쩌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나’가 아닌 ‘당신’이 돼 버린 순간 이 여행은 당신 스스로를 목적지로 한, 그렇기에 - 당신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한 - 좀처럼 그 끝에 다다를 수 없는 무한의 여정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동시에 한 걸음 ..
가면의 고백 | 미시마 유키오 | 문학동네 일상성을 칼로 베어버리는 강인한 낭만주의자가 써내려간 고백문학의 정수 입때껏 만나온 소설 안에서 작가의 자기 고백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상 허구적 요소가 보태어지기 마련이지만 대개는 과거 일화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 성격을 띤다. 다만 미시마 유키오 소설의 특이점이 있다면, 가면이라는 수단을 통해 일반적 의미가 지니는 고백을 전복시키고 그 이면의 진실을 구하고자 하는 데에 있어 보인다. 그는 자신의 출생부터 성인이 된 시점에 이르기까지, 마음 깊숙이 관통하고 있는 무언가를 향한 몰두와 채근의 일화들을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감각적인 문장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스스로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자기 노력인 동시에 본연의 자신에 가닿고자 하는 자기 나름의 탐구의 ..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 문학동네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칼 같은 글쓰기로 치명적인 열정을 진단한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 외국인이고 연하이면서 유부남인 사람과 사랑에 빠졌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불같은 사랑 앞에서 상대방 외에는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격정적 감정은 지난한 이별과 그것을 망라한 세월 앞에서 차츰 희석되어 감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열정의 한가운데를 지나버린 그녀에게 예전의 그 사람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소재의 특성상 다분히 자기 고백적이고 성찰적이기 마련인데, 특이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객관화된 시선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 놀라운 담담함은 외려 강렬함으로 치환되어 자못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세세하고도 명쾌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이 모든 감정의 변화를 그려..
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 | 문학동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프랑켄슈타인이 과학기술로 자멸해가는 인류에 던지는 최초의 경고 소설 속 주인공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창조한 피조물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극심한 혐오감 속에서 좌절과 분노를 거듭하다 결국 창조주를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그의 가족을 하나씩 죽여 나간다. 문득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뜻에 따라 또 다른 괴물, 그러니까 동반자를 만들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괴물은 그렇게만 해준다면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고 가급적이면 인간 사회 바깥의 외진 곳에서 살아가겠다고 애원하다시피 말하지 않았었던가.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이와 같은 참담한 비극은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제안임..
야간비행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문학동네 고독과 죽음에 맞서 미지의 세계를 정복해나가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숭고한 용기에 바치는 찬가 우편기를 몰고 밤하늘을 비행하는 조종사 파비앵과 전 항공 노선을 총관하는 책임자 리비에르의 시선 끝에서 자기 초월을 향한 인간의 놀라운 마음의 세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언뜻 보기에 그들은 어둡고 적막한 밤과 한바탕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파비앵은 밤의 무수한 위협 속에서도 그 안에 깃든 아름다움을 좇는데 기꺼이 조종간을 부여잡는다. 밤하늘이 선사하는 어둠 속의 반짝임, 그로 인한 벅찬 감정, 황홀함이 그를 단단히 사로잡은 것이리라. 리비에르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밤의 풍요로움을 말한다. 마치 ‘동화에 나오는 바닷속에 감춰진 보물처럼 밤의 깊은 어둠 속에 파묻힌 보물들을 생각’(p.100)하..
전쟁과 평화 | 레프 톨스토이 | 문학동네 거대한 서사로 완성한 모든 인간과 모든 삶에 대한 초상 생의 철학자 톨스토이가 남긴 불멸의 걸작 1805년에서 1820년까지,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방대한 소설의 양 만큼이나, 등장 인물도 다양하다. 그 다채로운 군상들이 보여주는 삶과 죽음의 모습은 소설 속 시대와 배경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지니기에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것이리라. 동시에 톨스토이가 바라본 세상을 향한 시선과 사고에 전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돼 준다. 그 안에서도 흔히 역사가 주목하는 이를테면, 나폴레옹으로 대표되는 영웅적 존재 대신 역사의 숨은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 민중들에 시선을 옮기고, 그들의 삶에 무게 중심을 둔 이야기이기에 한결 돋보이는 역작이기도 하다. 자 이제부터는 어떻게 될..
디어 라이프 | 앨리스 먼로 | 문학동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단편 작가, 우리 시대의 체호프 앨리스 먼로의 최신작이자 마지막 걸작! 작년 이맘때쯤 앨리스 먼로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읽고 감탄했던 그 여운을 되도록 오래 담아두고 싶었다. 더욱이 절필을 선언한 그녀이기에 한정된 단편들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마지막 단편집인 『디어 라이프』를 곁에 두고도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빙빙 두르고 둘러 오늘이 왔다. 그녀의 짧지만 긴, 은은하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었으므로. 그렇게 하루 한 편씩, 이 주간에 걸쳐 읽었다. 역시나 두 말할 필요 없이 예찬할 수밖에 없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 이루는 앨리스 먼로의 세계는 자칫 무미해 보이지만, 그 어느..
제5도살장 | 커트 보니것 | 문학동네 부조리와 모순의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반전反戰소설 『제5도살장』은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학살로 알려진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다룬 여느 반전(反戰)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보니것이 바라본 전쟁의 한가운데는 슬픔과 고통 대신 냉소와 풍자가 자리한다. 유머와 위트, 아이러니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모든 것은 ― 해설에 따르면 무려 백 여섯 번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 "뭐 그런 거지(So it goes)", 이 한 마디로 집약된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