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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5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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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일본 문학 최고의 경지

 

 

 

책을 펼쳐 들자, 나도 모르는 사이 눈앞에 새하얀 눈밭이 그려졌다. 그만큼 첫 문장이 주는 흡입력이 사뭇 대단하다. 이 같은 강렬한 끌림이 나뿐은 아니었는지, 작품 해설 첫머리에서도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나 '일본어가 지닌 독특한 운율이 제대로 살아 있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설국』의 서정적 문장들을 원서로 음미하고 싶단 생각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인터넷으로 찾아 첫 부분 몇 단락만 읽어봤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夜の底が白くなった。
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p. 7

 

 

 

역시나 유려한 문장이 주는 황홀감은 설경의 눈부심으로 더욱 극대화된다. 『설국』이 일본의 문화와 정서에 기댄 문학인 이상 그 설명하기 미묘한 한끝까지도 온전히 느끼고자 한다면, 원서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순 없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설국』은 배경이나 등장인물 등 모든 면에서 일본 색이 강하다. 그렇기에 그 나라, 그 인물들을 제쳐 놓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소설이고, 또한 그 안에 내재된 몽환적이면서도 리얼한 아름다움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미문을 통한 자연 묘사와 인물의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데 반해 실질적인 내용 구성면에서는 다소 흐릿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호하고 추상적 면면이 더해져 현실과 몽환 사이의 경계를 넘나듦이 가능해졌고, 결과적으로는 이를 통해 가와바타(川端)만의 아름답고도 신선한 '눈의 고장'이 구축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읽는 내내 감탄하고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하얀 설경으로 묘사되는 소설 속 배경에 은하수 내리는 컴컴한 밤 그리고 화재로 인한 검은 연기와 이글거리는 화염을 그린 이 소설의 마지막 화재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흑백으로 대비되는 세계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강렬한 색채 대비는 이 소설이 가진 또 다른 아름다움의 정수가 아닐는지.

 

일본의 고유의 문화와 정서가 진하게 묻어나는 『설국』. 여기에 일본 노벨 문학상 최초 수상작이라는 영예를 안겨준 작품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얼마 전 신경숙 작가의 표절 소동으로 얼룩진 우리 문학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과 오버랩돼 이 같은 소설이 더욱 탐나고 부러운 마음을 들게 한다.

 

 

 

 

 

설국 - 10점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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