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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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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미야자키 하야오 | 다우출판사 하야오 판타지 세계를 끌어낸 50권의 책!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반복해서 볼 적이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일궈 낸 세계에 새삼 반하게 된다. 그 황홀한 세계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인지, 늘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내가 책을 만난 무렵」에서 그는 아동문학에 대하여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는 이야기”(p.81)라고 말하며, 애정을 숨지지 않는다. 그것은 곧 그가 바라 마지않던, 그리하여 그려내고 싶었던 세계의 근간이 되었고, 매 작품마다 자신이 그려낼 수 있는 최선의 판타지를 통해 많은 이들을 깊이 감응하게 만들었다. 그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독서 에세이 『책으로 가는 문』은 지브리 팬들에게 확실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1부에서는 어린 시절에 재밌게 읽은 50권의 세계 명작을 소개하며 간단히 소감을 밝히고 있고,..
결국 못 하고 끝난 일 | 요시타케 신스케 | 한겨레출판 못하는 일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저자 요시타케 신스케는 그림 에세이를 통해 자신이 ‘결국 못 하고 끝난 일’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지극히 사소한 일들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곤란하고 어려운 일에 대한 고백인 셈이기도 해서 그 솔직함이 귀엽기도 하고 때때로 나 같은 사람이 여기 있었네, 싶은 동질감을 느끼게도 한다. 가령 생선 요리를 먹을 때 초고난위도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라도 된 듯, 가시와의 사투를 벌이곤 하는 나의 서툰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일이 그것. 이 외에도 그가 털어놓은 이런저런 이야기들 안에서 새삼 한 인간이 자기라는 사람에 대하여 진지하게 마주하는 모습이 건강해 보여 보기 좋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서투름을..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 에리카 산체스 | 동녘 우리가 무너진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관하여 저자 에리카 산체스는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 젊은 유색인 여성, 양극성 장애 환자,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이’였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태생적 환경은 스스로를 “대수롭지 않은 존재”(p.5)로 여기게 만들었고, 온갖 사회적 편견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글 쓰는 삶을 위하여 많은 어려운 시간들을 감내해 냈고, 비로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일상이 평온하기 그지없”(p.308)는 삶에 도달했다. 그 안에서 새삼 가장 어려운 선택이기도 했지만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던 수많은 고비들을 잘 넘겨,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삶을 쟁취해 낸 그녀와 그 삶에 경이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것은 온전한 그녀만의 힘으로 이루어낸 성취인..
애틋하고 행복한 타피오카의 꿈 | 요시모토 바나나(글)∙수피 탕(그림) | 한겨레출판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처럼 포근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림 에세이 남녀가 만나 연인이 되고 결혼하여 부부가 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다. 그 거듭된 과정 안에서 우리는 존재해 왔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단연코 사랑의 힘이었으리라. 요시모토 바나나가 글 쓰고 수피 탕이 그린 그림 안에서 그것을 새삼 깨닫는다. 지난날 아픈 엄마를 대신해 장을 보고 밥을 해주던 아빠의 모습은 그때 자주 해주셨던 진한 된장국의 맛으로 남아 있다. 후일 성인이 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도마 앞에 서면 그 시절 아빠가 알려주었던 무 써는 방법을 떠올리며 자연스레 아빠를 추억한다. 한편 자신이 온 세상인 것처럼 꼭 붙어 있던 아이가 훌쩍 성장해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대견해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어릴..
요코 씨의 말 1 - 하하하, 내 마음이지 | 사노 요코 | 민음사 심각한 고민도 어느새 훌훌 털어 버리게 만드는 사노 요코의 속 시원한 그림 에세이 시바견 잡종 강아지로 알고 데려와 함께 지냈는데, 커갈수록 닥스훈트의 짧은 다리를 지녔다면..? 이럴 때 반려인은 예상치 못한 외형에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교감을 쌓으며 이미 한 가족이 된 마당에 겉모습이 무슨 소용이랴. 그저 존재 자체로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이외에도 사노 요코만의 솔직 담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에피소들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새삼 그녀의 거침없고 명쾌한 이야기에 반할 수밖에 없었달까. 더욱이 정감 가는 그림이 더해져 보다 생생하게 요코 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애정은 가까이에 있는 존재를 아끼는 데에서 생겨난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 필리프 들레름 | 문학과 지성사 삶에 스민 소박한 즐거움에 대한 서른네 편의 보석 같은 에세이 일상에 깃든 소소한 행복의 순간을 전하고 있다. 여기 적힌 서른네 개의 소제목은 저자가 일상 안에서 마주한 작은 기쁨에 대한 목록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하루 하나씩 두근대며 어드벤트 캘린더를 여는 마음으로 그 빛나는 순간을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른 아침에 크루아상을 사러 가고 완두콩 깍지를 까며, 첫 맥주의 한 모금을 마시면서와 같이 사소하고 평범한 순간에도 보물을 발견하듯 기쁨의 찰나를 놓치지 않는 섬세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그것이다. 어쩌면 삶 속 행복이란 그것을 느낄 준비가 된 존재에게만 허락된 신의 선물은 아닐는지 생각해본다. 깜깜한 방 안에서 신비로움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뒤섞인다. 모든 것이 가볍..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 웅진지식하우스 인류의 위대한 걸작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한 남자의 삶과 죽음, 인생과 예술에 대한 우아하고 지적인 10년의 회고 형을 잃은 저자는 뉴욕의 마천루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도 유망한 회사에서 나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기로 한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세상을 등지고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p.69)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정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이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 p.33, 34 「1장 -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
묵주알 | 나가이 다카시 | 바오로딸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수년 전 우연찮게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인 나가이 다카시(永井隆)를 알게 됐다. 나가사키 원폭의 현장에서 두 아이와 살아남았지만, 아내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였다. 그는 참혹한 현장 속에서도 낙담하기보다는 나가사키의과대학의 교수로서 아픈 사람들을 도우며 그날의 참상을 기록함으로써 제 소임을 다하고자 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바오로딸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중 하나인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통해 같은 시리즈에 있던 그의 『묵주알』을 알게 돼 읽어 보게 된 것이다.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실로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을 가져왔다. 나가이 다카시 역시 참화의 현장 속에서 아내와 집은 물론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