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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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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씨의 말 1 - 하하하, 내 마음이지 | 사노 요코 | 민음사 심각한 고민도 어느새 훌훌 털어 버리게 만드는 사노 요코의 속 시원한 그림 에세이 시바견 잡종 강아지로 알고 데려와 함께 지냈는데, 커갈수록 닥스훈트의 짧은 다리를 지녔다면..? 이럴 때 반려인은 예상치 못한 외형에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교감을 쌓으며 이미 한 가족이 된 마당에 겉모습이 무슨 소용이랴. 그저 존재 자체로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이외에도 사노 요코만의 솔직 담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에피소들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새삼 그녀의 거침없고 명쾌한 이야기에 반할 수밖에 없었달까. 더욱이 정감 가는 그림이 더해져 보다 생생하게 요코 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애정은 가까이에 있는 존재를 아끼는 데에서 생겨난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 필리프 들레름 | 문학과 지성사 삶에 스민 소박한 즐거움에 대한 서른네 편의 보석 같은 에세이 일상에 깃든 소소한 행복의 순간을 전하고 있다. 여기 적힌 서른네 개의 소제목은 저자가 일상 안에서 마주한 작은 기쁨에 대한 목록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하루 하나씩 두근대며 어드벤트 캘린더를 여는 마음으로 그 빛나는 순간을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른 아침에 크루아상을 사러 가고 완두콩 깍지를 까며, 첫 맥주의 한 모금을 마시면서와 같이 사소하고 평범한 순간에도 보물을 발견하듯 기쁨의 찰나를 놓치지 않는 섬세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그것이다. 어쩌면 삶 속 행복이란 그것을 느낄 준비가 된 존재에게만 허락된 신의 선물은 아닐는지 생각해본다. 깜깜한 방 안에서 신비로움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뒤섞인다. 모든 것이 가볍..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 웅진지식하우스 인류의 위대한 걸작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한 남자의 삶과 죽음, 인생과 예술에 대한 우아하고 지적인 10년의 회고 형을 잃은 저자는 뉴욕의 마천루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도 유망한 회사에서 나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기로 한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세상을 등지고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p.69)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정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이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 p.33, 34 「1장 -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
묵주알 | 나가이 다카시 | 바오로딸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수년 전 우연찮게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인 나가이 다카시(永井隆)를 알게 됐다. 나가사키 원폭의 현장에서 두 아이와 살아남았지만, 아내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였다. 그는 참혹한 현장 속에서도 낙담하기보다는 나가사키의과대학의 교수로서 아픈 사람들을 도우며 그날의 참상을 기록함으로써 제 소임을 다하고자 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바오로딸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중 하나인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통해 같은 시리즈에 있던 그의 『묵주알』을 알게 돼 읽어 보게 된 것이다.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실로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을 가져왔다. 나가이 다카시 역시 참화의 현장 속에서 아내와 집은 물론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이게 다예요 | 마르그리트 뒤라스 | 문학동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마지막 작품!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마지막 기록, 『이게 다예요』. 긴 투병 생활 속에서 써 내려간 글을 통해 그녀는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을 고통스러워하며 죽음이 끔찍하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연인에 대한 사랑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한편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충만한 열정 역시 털어놓는다. 그 안에서 자연스레 죽음 앞에 놓인 한 인간을, 그녀의 진솔한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함께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랑이고, 죽음이고, 말이고, 잠자는 것이다. - p.14 「생브누아 거리, 11월 27일 일요일」 이게 다예요 -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고종석 옮김/문학동네
그리움의 정원에서 | 크리스티앙 보뱅 | 1984Books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꾼 작은 글의 정원 크리스티앙 보뱅은 사랑하는 여인 지슬렌을 떠나보낸 뒤 글로써 못다 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부재를 가슴 깊이 슬퍼하면서도 여전히 그는 마음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그녀의 존재를 마주하고 있다. 더욱이 그 문장들은 보뱅 특유의 감각적인 언어 안에서 피어나 오직 그녀만을 위한 “작은 글의 정원”(p.9)을 이루고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덕분에 그 정원 안에서 나는 —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서 —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되뇌면서. 지슬렌, 이제는 안다. 이제야 네 뜻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없는 삶을 여전히 축복하고,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다. ..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 시공사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 없는 세상의 낱말들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감정 따위를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골몰하다가 그만두는 경우가 있다. 지금의 이 마음을 더없이 잘 설명할 단어가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품고서 말이다. 그런 까닭에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에서 소개하고 있는 단어들은 낯설지만 적당한 단어를 찾아 헤매던 우리의 마음을 번뜩이게 해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아가 각기 단어들이 품고 있는 의미가 언어의 벽을 넘어 저마다의 가슴속에 슬며시 와닿는 순간을 고대하게도 만든다. 덕분에 마음을 표현하고 전할 수 있는 초면인 단어들과의 만남 안에서 신선한 즐거움을 느꼈다. 온 마음을 다하면 결과도 좋을 것입니다. ‘메라키’라는 개념은, 그리스인들의 사려 깊은 열정과 작은 것들에 감사하는 그들의 문화..
지극히 낮으신 | 크리스티앙 보뱅 | 1984BOOKS 하느님을 노래한 음유 시인이자 가난한 이들의 친구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충만한 사랑으로 이르기 위한 삶의 여정 가운데 기쁨을 소망한다. 그것이 곧 진리인 연유다. 높은 곳 아닌 낮은 곳에 있고, 충족 아닌 결핍에 있는 그 진리를 성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간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내려놓고 가난을 받아들인다.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난한 자이기를 꿈꾼다. 지극히 높으신 분만을 바라보던 두 눈과 마음의 상태는 지극히 낮으신 분으로 향하였다. 그러고는 세상사 모든 질문의 답변 역시 성서가 아닌 성서를 읽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음을, “몸과 정신과 영혼으로 느끼는 것”(p.16)임을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증명해 보인다. 그리하여 거룩하고 성스러운 존재가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