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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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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 문학동네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며 온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7편의 긴 편지 표제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포함하여 일곱 편이 수록돼 있다. 모두 읽고 나서 깨달은 것이 내가 유독 인물들의 마음을 가늠해 보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어찌하여 그들이 품었던 마음에 이토록 침잠해 있던 걸까. 마음속에 자리한 어떤 기억이 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알게 모르게 영향 미치고 있음을 조금은 쓰린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갑자기 매서워진 계절의 탓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나는 기억의 자리를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 01.「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자신이 선 자리에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외적으로 장애물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나아갈 수 있을지, 사라..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 팩토리나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 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꿈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뭉클하고 따뜻한 이야기 잠들어야만 방문할 수 있는 세계,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꾸고 싶은 꿈을 구입한다. byeolx2.tistory.com 꿈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뭉클하고 따뜻한 이야기 잠들어야만 방문할 수 있는 세계,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꾸고 싶은 꿈을 구입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상대로 꿈 파는 일을 하는 백화점 직원들과 그곳에 꿈을 납품하는 제작자들이 모인 곳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판타지임에도 허무맹랑하기 보다는 외려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일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말하자면, 그들이 이룩한 세계는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잠을 자고..
프리즘 | 손원평 | 은행나무 만남과 이별, 흩어지는 '마음'을 다양한 빛깔로 비추어가는 이야기 유년 시절, 내가 각별하게 아끼던 몇몇 것 중의 하나가 프리즘이었다. 때때로 서랍 속의 그것을 꺼내어 하늘을 향해, 정확히는 태양을 향해 손을 뻗어 보이곤 했는데, 그 순간 여러 빛깔로 나를 기쁘게 하던 것이 바로 프리즘이었던 것이다. 파란 물체 주머니 안에서는 그저 투명한 삼각기둥에 불과했던 것이 빛과 만나는 순간 영롱한 빛깔을 뽐내는 걸 가만히 바라보면서 어찌나 신기했던지. 그 광경을 보면 볼수록 질리기는커녕 늘 새롭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생각하곤 했다. 제 혼자서 멋진 것도 좋지만, 서로가 존재함으로써 빛날 수 있다면 그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대단한 기적이고, 마법일 거라고. 나는 그것의 근사함에 대하여 늘 동..
복자에게 | 김금희 | 문학동네 어떤 실패도 삶 자체의 실패가 되지 않도록, 모든 넘어짐을 보듬는 작가 김금희의 가장 청량한 위로 소설 『복자에게』가 관통하고 있는 이야기 안에서 삶을 향한 용기, 희망의 기운이 은근하게 전해온다. 우리 각자는 ‘울고 설운 일’ 투성인 삶 속에서도 기어이 이어가고자 안간힘을 쓰는 존재들이기에 영초롱이와 복자, 그 밖의 인물들을 통해 위로받고, 다시금 다짐도 하게 되는 것이리라. 흔들릴 수는 있지만 쉬이 꺾이지는 말자고, 그리하여 계속해서 나아가자는. #. 새별오름에서의 일 소설의 후반, 복자는 영초롱이에게 전화를 걸어 ‘새별오름에 가본 적 있어?(p.213)라고 묻는다. 그렇게 오름을 오르는 동안, 저 멀리 보이는 ‘나 홀로 나무’, 복자의 결혼식과 할망 이야기를 거쳐 정월대보름이면 오름에 불을 놓아 억..
여름의 빌라 | 백수린 | 문학동네 인생의 여름 안에서 마주하는 불가해라는 축복 비로소, 기어코 나의 작은 세계를 벗어나는 이들의 눈부신 궤적 어느 누구에게도 입 밖의 말로는 도무지 가닿을 길 없는 마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대개는 욕망이라는 파도가 현실의 바위에 부딪쳐 새하얀 물보라를 일며 부서지는 찰나에 발현하는 그런 마음들, 그러니까 작가 백수린이 그려낸 화자들의 심리적 균열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의 평온을 위협받는 와중에도 그들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소란하지 않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순간들을 흘려보낸다. 그리고 훗날 찬찬히 되짚어 봄으로써 어떤 식으로든 끝내 마주하고야 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거의가 지극히 내밀하고 사적인 데다가 자신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의 것이기도 해서, 애당초 부유하다..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 문학동네 순하고 여린 것들로 북적대던 아름다운 시절이 끝나고 찾아온 적막 그 세상에서 끝내 버릴 수 없던 어떤 마음과 그 마음이 남긴 몇 줄의 시 지난날 기행이 걸어온 어둠길은 오늘에서야 한줄기 빛을 되찾는다. 시를 쓸 수 있었던 한여름 밤의 꿈과도 같았던 시절 이후, 끝없는 밤을 걷고 또 걸어야만 했던 그의 고행이 시대를 뛰어넘어 작가 김연수의 숭고한 손끝 작업을 통해 비로소 새날의 희망으로 가닿은 까닭이다. 대개 우리는 개인의 꿈을 좌초시키는 혹독하고도 암담한 현실, 그 안에서 인간은 무얼 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골몰하고는 한다. 그러니까 제각기 마주한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고 아파하며 절망도 하는 것이다. 나는 시를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 안에서 기행 그 자신이 바라고, 작가와 나를..
시절과 기분 | 김봉곤 | 창비 한국문학이 기다려온 새로운 사랑의 기분 우리는 저마다 열차에 올라있다. 같은 목적지를 약속한 두 사람이었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러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별하기도 하고, 애초부터 혼자였던 이는 뜻밖의 누군가와 마음이 통해 남은 여정을 동행하기도 하면서. 그렇기에 열차 안 좌석의 주인은 영원하지 않다. 내 자리였지만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도, 누군가의 자리를 중도에 내가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수한 반복이 빚어내는 크고 작은 혼재 안에서 열차만은 계속해서 나아간다. 끝없이 끝없이……. 그 지난한 여정 안에서 우리는 대개 사랑을 한다. 그러므로 훗날 그 시절의 기분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한때 사랑했던 대상을 상기하는 일과도 적이 다르지 않으리라. 그러는 사이 우리는 아주 조금씩 현재의 자신에 닮아..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 문학동네 찌를 듯 무자비하면서도 따스한 햇빛처럼 황량한 폐허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내는 손길처럼 끝인 듯 시작을 예고하는, 아직은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 나는 알고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이따금 생각한다. 어제는 알았던 것이 오늘은 알지 못하게 될 수 있고, 내일이면 알 수 있으려나 싶었던 것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불확실성, 그것이 이 세계에 발 딛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숙명, 삶이란 것의 속성이라 여기면서. 단편 「모르는 영역」에서 부녀 관계인 명덕과 다영 사이에는 어떤 거리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상대방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한 채 오해하고 서운해하기도 한다. 허나 서로를 향한 애정,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기꺼이 알고자 하는 노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 그 점이 매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