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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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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황보름 | 클레이하우스 서점이라는 공간에 있으면, 우린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니까요 한적한 골목 어딘가에 휴남동 서점이 있다고 상상해보았다. 이제 막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시각, 은은한 조명으로 주위를 밝히고 있는 이 공간을 과연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 그 안에서 각자의 일에 충실하며 조용하고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때로는 서로를 향해 진솔하게 이야기꽃 피우는 사람들 사이에 슬며시 합류하고픈 마음이 분명 나를 그곳으로 이끌리라. 이와 같은 끌림은 영주와 민준이 용기와 진심을 다해 이끌어가고 있는 휴남동 서점을 한동안 지켜본 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각자의 고민과 상처를 안고서, 그럼에도 녹록지 않은 세상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따듯한 공간이기에 한층 그들과 어..
장미의 이름은 장미 | 은희경 | 문학동네 나를 잊기 위해 떠나온 곳에서 뜻밖에 나 자신이 선명해지는 감각 인생의 가장 예외적인 시간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 일상 아닌 곳으로 발걸음 하는 일이 내게는 정기적인 의례와도 같았다. 실상 그것은 외로운 일이었고 손톱만큼의 서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일말의 전환과 이를 위한 정신적 쉼을 갈구하던 나에게 그것은 감수할만한 값어치로 여겨졌다. 나 이외의 다른 이유를 갖다 붙이지 않고 내키는 대로 어디로든 내딛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이 삶이 오직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의 의지로만 매듭지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안도의 작업이기도 했으니까. 거짓 없는 감정과 그에 따른 행위는 공간이 주는 낯섦 안에서 한층 유연하고도 대담해질 수 있었고, 그런 여유 있는 자신을 만나는 일이 퍽 근사하게 다가왔던 것 일수도..
아몬드 | 손원평 | 창비 공감 불능 사회, 차가움을 녹이는 아몬드 서로를 향한 진심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곧 자기 안에 있는 아몬드의 크기를 가늠해 보는 일일진대, 타인을 이해하려는 안간힘의 가치를 일깨운다. 돌이켜 보면, 윤재는 지난날 엄마와 할멈이 양쪽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 주었던 온기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와 같은 기억의 힘이 제 자신을 지탱하게 하고 때로는 타인을 구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윤재가 기꺼이 곤이를 찾아 나섰던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으리라.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과 곤이의 삶이 바뀌기를, 그리하여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 윤재와 곤이가 그랬듯, - 누구나 가슴속에 저마다의 괴물 하나쯤은 품고 산다고 여긴다. 다만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무언가를..
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 나무옆의자 힘들게 살아낸 오늘을 위로하는 편의점의 밤 정체불명의 알바로부터 시작된 웃음과 감동의 나비효과 세상은 타인을 향한 관심과 포용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는 곳이지 않을까 헤아려 본다.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손길의 작은 씨앗이 관심과 관대함 속에 무럭무럭 자라 서로의 아프고 모난 구석마저도 감싸 안아주었을 때, 세상에는 제법 쓸모 있는 우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녹록지 않은 나날에도 오늘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서로를 향한 포용의 힘이 절대적임을…, 청파동의 불편한 편의점 ALWAYS를 거쳐 간 사람들 안에서 여실하게 느낀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
작별하지 않는다 | 한강 | 문학동네 이곳에 살았던 이들로부터, 이곳에 살아 있는 이들로부터 꿈처럼 스며오는 지극한 사랑의 기억 불의한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인선의 간곡한 부탁으로 경하는 엉겁결에 그녀의 제주 집으로 향한다. 홀로 굶주리고 있을 작은 앵무새 아마를 살리기 위하여.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폭설로 인한 궂은 날씨에도 가까스로 제주 공항에 도착한 경하. 그러나 그녀의 혹독한 여정은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입때껏 본 일 없는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때때로 고립되는 일이 잦은 중산간 마을에 위치한 경하의 집까지 닿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까닭이다. 더군다나 해는 곧 저물 것이다. 그때의 막막함, 낭패감, 두려움이 무서운 속도로 내 마음을 장악했다. 이게 정녕 경하의 일이기만 할까, 어쩌면 경..
1차원이 되고 싶어 | 박상영 | 문학동네 십대들의 사랑이 그려내는 새로운 파문과 깃털처럼 쏟아지는 환희의 순간들! 제 몸에 내는 생채기인 줄 빤히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간절함, 그 절박함으로 점철되는 - 깊이 묻어두었던 - 지난날을 마주하게 한다. 말간 얼굴 뒤로 꽁꽁 숨기고 싶었던 그 많은 비밀들을 끝없이 단속해야만 했던 나날이었다고. 발설하고 싶은 일말의 진심마저 애처로이 억누르면서도 어느 틈엔가 새어나가고만 것을 책망하며 무마시키고자 집요하고도 필사적이기도 했던 폭력적이고 잔혹했던 시간들이었다고 자조하면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기도 한 아름다웠다는 말에 가두고 살아왔다는 뜨악한 진실을 마주해야 함에 얼마간은 당혹스러웠던 오늘, 찰나의 달콤함에 기대어 얼마든지 쓰디쓴 밤을 기꺼이 유영할 수 있었던 그때의 내가 안녕하기를 달래 본다. ..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 이미예 | 팩토리나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이미예 꿈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뭉클하고 따뜻한 이야기 잠들어야만 방문할 수 있는 세계,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 그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꾸고 싶은 꿈을 구입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상대로 byeolx2.tistory.com “이게 네가 찾던 꿈이길 바라.”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초보 직원이었던 페니가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돌아왔다. 이제 근무한 지 1년이 넘어 연봉협상을 하고, 일에 있어서도 제법 능숙해진 모습으로 말이다. 더욱이 꿈 산업 종사자로 인정받아 컴퍼니 구역의 출입증을 받게 되면서 - 꿈에 대한 불만들을 접수받고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 민원관리국에 드나들게도 되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꿈의 세계가 한층 확장되면서 이전보다 더 자유로이 상상의 나..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 김금희 | 창비 미세한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는 환한 문장들 김금희라는 믿음직한 세계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는 김금희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그녀는 이 소설들을 한데 엮으면서 ‘모두 사십 대에 썼다는 사실을’(p.320) 상기하며, ‘내가 서 있는 지금은 8월의 끝자락쯤 될까, 혹은 후하게 쳐준다면 장마가 막 끝나갈 7월 중순쯤, 무엇이든 이제 나는 적어도 어떤 봄과 여름에 대해서는 말할 준비가 충분히 된 것 같다.’(p.320)라고 적고 있다. 그렇기에 여기에 실린 소설들은 모두 한창 여름, 그러니까 저마다의 치열한 절정을 향해 내달려 본 일이 있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참을 지나 돌이켜 봤을 때에야 비로소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날들에 대하여 말이다. 그렇게 흘러가고야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