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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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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 권석천 | 어크로스 저널리스트 권석천, 당신과 나, 우리의 오늘에 대해 질문하다 글을 마주하면서 한동안 나는 냉엄한 기분에 젖었다. 그가 바라본 세상과 사람을 향한 시선 안에서 각성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죄의식, 그로 인한 낭패감 탓이었다. 늘 자기 객관화를 염두에 두고자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합리화하며 무너지고 말았던 일을 스스로에게 조차 가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이중 잣대였다. 자신으로 인한 잘못은 은근슬쩍 넘기기도 혹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면서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히 따지려는 행태, 이것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져 있을 때의 불상사를 심심찮게 목도하며 한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더욱이 사회 정의를 입버릇처럼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안으로는 자신과 가족, 속한 집단의 일에는 서슴..
죽은 자의 집 청소 | 김완 | 김영사 죽음 언저리에서 행하는 특별한 서비스 엄연한 현실의 일임에도 도무지 믿기 힘들 때가 있다. 이게 진짜냐고, 차라리 픽션이라고 하는 편이 한결 납득이 가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게 만드는 그런 일들. 죽은 자의 집 청소, 이른바 특수청소라는 업이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가령 일본 소설 속 주인공이 맞닥뜨린 상황이라고 하는 편이 더 그럴싸한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대개의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이야기란, 일상의 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마뜩잖은 구석이 있어서 – 의도를 가지고 있든 무의식이든 간에 – 비현실의 일로 미루어 두려는 심리 기제가 발동한 경우가 아닐는지. 말하자면 구태여 알고 싶지 않은 일, 차라리 모르는 걸로 치부하고 싶은 일들 말이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손에 쥐고 있는 동안 내..
친구에게 | 이해인(글)·이규태(그림) | 샘터사 떨어져 있어도 가까운 마음으로 그리움 담아 전하는 글 이해인 수녀가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해 온 우정에 대한 글을 모으고 여기에 새로이 쓴 글을 더해 한데 엮은 책, 『친구에게』.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속 거리 두기가 한창인 요즘이어서 한결 애틋하게 다가오는 글들이다. 더욱이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친구와의 추억을 상기하게 하는 서정적 그림이 보태져 한층 마음 한구석을 따뜻하게 데운다. 때때로 사람들은 무언가를 잃고 서야 소중함을 깨닫고는 하는데, 이 힘든 시기가 꼭 그 연속인 것만 같다. 하지만 어쩌면 그동안 어떠한 의심도 없이 누려온 일상의 모든 것들이 전복돼 버린 지금이야말로 소중히 대해야 했음에도 소홀히 했던 것들을 그러모아 다시금 품을 수 있는 좋은 기회 인지도 모르겠다. 그 중의 하나가 아끼는 ..
사랑 밖의 모든 말들 | 김금희 | 문학동네 몰랐던 마음, 잊었던 기억 사랑과 사랑 밖을 아우르는 우리의 거의 모든 말들 김금희 작가의 소설 속에서 만나 온 인물들은 대개 무심한 듯 다정했다. 어떤 처지나 상황에도 소란하지 않은 채 묵묵했고, 담담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서 있는 공간은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바로 이곳과도 같아서, 그들이 하는 말과 생각, 행동을 가만히 좇으면서 나는 안도했고, 때때로 슬퍼하기도 분노하기도 했다. 동시에 저마다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이들을 보듬으며 살고자 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풍경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여겼다. 데뷔 십일 년 만에 처음으로 펴 낸 작가의 산문집이 한층 고대됐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은 작가가 유년에서 현재에 이르기 까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나날에 대한 기록이다..
그 사랑 놓치지 마라 | 이해인 | 마음산책 수도원에서 보내는 마음의 시 산문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마주할 적이면, 곧잘 고해소 앞에 선 심정이 되곤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상기시킴으로써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혼자 가만히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자, 다짐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시간들은 잠시 방황하고 주춤했던 나를 슬며시 깨운다. 마치 보석을 마친 뒤 한결 말갛게 씻긴 내가 되어. 이 모든 것은 수녀님의 시와 산문이 선사하는 신비랄 수밖에. 올해 연말과 내년의 연시도 수녀님의 새로운 책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살아갈수록 말을 더 조심조심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 삼아 가볍게 던진 말이 커다란 오해의 무게로 돌아와 상처 받고 눈물 흘린 시간들이 제게도..
오늘을 산다는 것 | 김혜남 | 가나출판사 김혜남의 그림편지 스마트폰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나를 표현한다! 정신분석 전문의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던 저자가 파킨슨병을 앓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 책은 그 과정 안에서 자신의 힘들고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삶 속의 작은 기쁨과 그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이어가고자 했던 나날의 기록에 다름없다. 그렇기에 아픈 몸으로 인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살아가는 날들 안에서 희망을 보고자 했던 그녀의 의지와 신념의 결과물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등 뒤에 자기만의 짐을 짊어지기 마련이다. 모양, 크기, 무게, 그 성질도 제각기여서 누구의 짐이 고된 것인지 함부로 재단하기 어렵다. 그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짐을 들쳐 메고 나아가고자 분투할 따름..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 달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이 세계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일, 나는 그 비결을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 적어도 시작은 거기에서부터 라야 한다고 – 믿고 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신뢰하는 연유다. 그것은 곧 살아갈 날들의 지평을 견고하게 다져가는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므로. 그러므로 거친 비바람에도 쉬이 뽑히지 않는 뿌리를 내리는 동시에 무성한 잎을 피우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할 이 시간들을 늘 고대하고 있다. 사실 나는 혼자이기보다는 둘이거나 셋, 그 이상이기를 바랐다. 혼자 있는 것에 도무지 익숙지 못한 데다가, 어떤 때에는 두렵기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그랬던 내가 철저하게 혼자이기를 갈망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에 내가 느꼈던 스스로에 대한 낯..
잠시만 쉬어 갈게요 | 보담 | 더테이블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세요? 한동안 기승이던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살갗에 스치는 바람결을 느낄 적이면, 비로소 안도의 숨이 나온다. 매 해 나는 그렇게 가을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에게 어떤 계절이 가장 좋냐는 질문을 한다면 주저 없이 가을을 꼽으리라. 정신이 아득할 정도로 무덥지도 혹독하게 춥지도 않은 그 선선함이 주는 상쾌함을 잊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다시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라면 어째서 봄일 수는 없는 거냐고. 오히려 온갖 생명력이 태동하는 파릇한 봄이 더 경이롭지 않느냐고. 확실히 일리가 있다. 더욱이 봄에는 어찌 됐든 새로이 출발할 수 있으리란 어떤 마법의 기운이 확실히 감도는 듯도 하니까. 그러나 그 신비에 가까운 힘이 나에겐 설렘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