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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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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 세계사 한국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 박완서 그가 남긴 산문 660여 편 중 가장 글맛 나는 대표작 35 작가 박완서를 떠올리면 단연 ‘한국문학의 어머니’라는 칭호부터 떠오른다. 여기에 더해, 내 마음속에서는 입담 좋은 할머니로 우뚝 서 있다. 단순히 물리적 나이차가 그즈음인 영향도 있겠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매몰되어 있을 적이면 늘 할머니의 너른 품, 때때로의 인간적인 모습에 친근함을 느끼곤 했던 까닭이다. 더욱이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격동의 시대, 그 생생한 이야기를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전해 듣고 싶은 작은 바람이 있었지만 허락지 못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허기진 부분을 문학이라는 울창한 숲이, 그 안에서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 | 열림원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여행해야 할 신비 가만히 코로나 직전까지의 근래 여행들을 떠올려 보았다. 실로 나의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서도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일상만 아니면 좋겠다는 이를테면 탈출의 의미가 컸던 것이리라. 그런데 이제는 코로나19(COVID-19)로 인해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마음만 먹으면 여력이 되는 한 떠날 수 있었던 나날의 소중함과 직면해야만 하는 순간에 이르고 말았다. 그것은 곧 지난 여행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즐거웠던 한때를 회상하는 일인 동시에 그간의 여행이 알맹이 없는 한바탕의 소비에 그치고 말았던 건 아니었는지 새삼 살피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 즈음에 마주하게 된 류시화 시인의 『하늘 호수로 떠..
2인조 | 이석원 | 달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스스로와 잘 지낸다는 것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쉬운 일만을 아님을 절감할 때가 왕왕 있다. 돌이켜 보면, 스스로에게 관대하기보다는 가혹한 편에 속했기에 시시때때로 나 자신과 대치 중 일 때가 많았던 지난날이었다. 무엇을 위해 스스로를 다그쳤던 걸까, 조금 너그러울 수는 없었던 걸까, 비로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최후의 보루는 다름에 아닌 나 자신임을,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이 결국 가장 중요하고 또 선행되어야 할 일임을 일련의 상황 속에서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두어 번, 산문집을 통해 만나온 이석원 작가의 신간 『2인조』는 일년간에 걸쳐 자기 자신에게 한층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그리하여 더 나은 삶으로 향하겠다는..
이해인의 말 | 이해인·안희경 | 마음산책 수도생활 50년, 좋은 삶과 관계를 위한 통찰 재작년과 작년에 걸친 이맘때, 이해인 수녀님의 책과 함께 하면서 이런 영광을 다시금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는데 감사하게도 재차 수녀님의 따끈한 신작과 연말연시를 보낼 수 있었다. 어찌나 설레고도 기쁜 일이었는지! 더욱이 이번 책은 저널리스트 안희경과 수녀님의 인터뷰 대담집으로, 오랜 수도생활 안에서 다스리고 가다듬으시어 품어 온 생각과 말씀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여서 보다 뜻깊고 값진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특히나 수도자로서의 삶을 되돌아보시며, ‘수도 생활을 50년 하고 난 제 심정이 어떠냐 물으면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느낀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p.55)’라는 말씀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수도자이기도 하지만, 시인이시기도 한 그분이..
다정한 매일매일 | 백수린 | 작가정신 빵과 책을 굽는 마음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에 엮인 짤막한 글들은 빵과 책이라는 언뜻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그러나 양 쪽 모두를 좋아해 마지않는 작가에 의해 유기적 관계성을 획득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빵을 굽고 소설을 써 내려가는 마음에 깃든 온기에 대하여. 그 안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허기진 몸과 마음을 넉넉히 달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작가의 소설 아닌 글들을 마주하면서 올해 초와 여름, 그녀의 두 권 책에서 만나온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리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평온했던 일상 속 심리적 균열을 일으키는 감정들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응해 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하든 결국 자신이 맞이할 내일을 묵묵히 맞이하는 편에 서 있었던 존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 공지영 | 위즈덤하우스 나를 사랑하기 위한 노력의 기록 공지영 작가가 섬진강 근처로 보금자리를 옮기고서 스스로를 보듬고 사랑으로 감싸 안고자 노력해온 나날에 대해 풀어쓴 에세이집이다. 그렇기에 가만히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적잖이 마음 공부가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와닿았던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일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대목이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를 아끼기보다는 몰아세우기에 바빴던 지난날의 기억이 선연하다. 어쩌면 나는 일상에서 불가피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지치고 힘든 일들에 대하여 미워하고 성낼 대상이 필요했고, 그건 곧 나 자신이어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가장 쉽고 간단했을 테니까. 그러나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스스로를 미워하는 일만큼 비극은 없다. 다른 누구도 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심보선 | 문학동네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시인이면서 사회학자이기도 한 이의 단상 기록은 그 어느 글보다도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투명하게 비춘다. 그 안에서 각자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과, 가족, 지인, 그 밖의 모든 이들에 대하여, 그들이 서 있는 이 세계에 대하여. 개인의 일은 때로 우리의 일이 되기도 하고, 그리하여 사회와 시대의 일이기도 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의 일상 속 사유를 쉬이 흘려보낼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리라. 여담이지만,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라는 책 제목이 마음을 동하게 했다. 시인다운 인사말이라는 생각과 함께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안부를 진심으로 건넬 수 있는 그런 곳이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계라는 안도감 때문이기도 했다. 시대가 불행할 때 시인의 역할이 중..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 백영옥 | arte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백영옥백영옥이 우리 곁에 다시 가져온 추억 속 빨강머리 앤의 웃음, 실수, 사랑과 희망의 말들!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날들이 아니라 진주알이 하나하나 한 줄byeolx2.tistory.com   나를 처음 사랑하기 시작하는 나를 만나다   수년 전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고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앤과의 추억에 한껏 마음이 동했던 적이 있다. 앤에게 여전히 사랑스러운 모습 그대로 있어줘서 고맙고 또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이후 앤 관련 전시가 있으면 찾아가 보기도 하고, 구태여 앤과 다이애나 피규어 커스텀에 열을 올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번에 만난 두 번째 이야기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초록 지붕의 집으로 가기 전, 그러니까 앤의 유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