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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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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이렇게 사소해도 되는가 | 강진이 | 수오서재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 삶을 수놓은 행복과 감사를 채집하는 그림일기 안온하게 감싸 주는 이 기분은 무얼까. 강진이 작가의 글과 그림을 만나보면서 내내 그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행복을 알아채고 감사할 줄 아는 이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그녀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정성껏 그리고 쓴 그림일기 안에서 나 역시도 평범한 일상 속 작은 행복을 새삼 일깨우며 따스함을 양껏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하루 이 모든 아름다움에 감사해(p.211)”야지. 눈부신 오후에 누리는 여유로움에 감사하다. 잠깐의 산책도 마지막인 듯 최선을 다해 즐기는 강아지 달님이에게, 서로 믿고 의지하며 무럭무럭 힘을 내 자라는 빨간 담쟁이에게, 풀 한 포기를 사랑으로 바라보..
작별들 순간들 | 배수아 | 문학동네 비밀과 매혹, 기다림과 망각, 글쓰기와 언어, 그리고 한 권의 책 열네 편의 글 안에서 나는 열네 번의 산책에 동행하고 있었다. 내디딘 걸음걸음은 그 자체로 — 화자와 베를린 서가의 주인, 그리고 나를 포함한 — 우리의 순간들이 되었고 나는 그것을 느꼈다. 더욱이 혼자 있는 중에도 틈만 나면 머릿속으로 숲 속 울타리에 둘러싸인 정원 오두막을 떠올리곤 했는데, 왜냐하면 그 공간에 머물렀기에 비로소 가능해진 모든 순간들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까닭이었다. 문장 따라 산책길에 나선 나 역시, 그 정원 오두막에 속해 있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굳게 믿고 있었으므로.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도 근사한 경험이었다. 알지 못했지만 실은 알고 있었고 잊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것들을 각성하게 만드는 한편 그 안에서..
헌책 낙서 수집광 | 윤성근 | 이야기장수 시간을 끌어안은 헌책에서 쏟아져나온 낙서와 작동사니의 박물관 기본적으로 타인의 흔적이란 그리 달갑지 않다. 기왕이면 새것을 좋아하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러나 수수께끼 같은 낙서나 감상적 느낌을 적은 책 속의 흔적을 발견한다면, 숨겨진 사연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긴 어려우리라. 나 역시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 일전에 흥미롭게 읽은 『헌책방 기담 수집가』의 저자를 기억하고 있던 까닭에 과연 그 다운 책이 새로이 출간됐다는 인상과 함께 — 헌책에 담긴 각종 사연들이 몹시도 궁금해졌으니.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 중인 저자는 자신을 가리켜 — 책 제목이기도 한데 — ‘헌책 낙서 수집광’이라 칭한다. 다량의 헌책들 사이에서 종일 씨름하다 보면 여기저기 눈에 띄는 게 과거의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 샘터사 당신이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 “…누가 뭐래도 희망을 크게 말하며 새봄을 기다린다.”(p.239) 맺었던 장영희 교수의 마지막 문장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새봄을 기다린다’는 말을 여러 번 읊조리기도 하면서. 그것은 한 사람의 독자로서 품게 된 안타까움과 고마움의 교차된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녀의 일을 진즉 알고 있는 데다가, 힘든 와중에도 희망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글을 남기고 갔기에 말이다. 그 안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장,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패기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 인간의 ‘선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p.220, 221) 적고 있었던 걸 다시금 떠올려 본다. 그녀는 앞장서 그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 백수린 | 창비 깊은 사색이 담긴 아름다운 문장, 내 안에 사랑과 행복을 일깨워준 모든 존재에 대한 기록 제 안의 행복을 샘솟게 하는 것들을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수년 째 언덕 위의 집에 사는 작가가 털어놓은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 안에서 나는 이 겨울의 추위도 잊은 채 도리어 포근함을 느낀다. 어쩌면 안도했다는 말이 더 적확하겠다. 그것은 우리가 쉬이 생각하고 단정 짓는 행복의 잣대에서 한 걸음 물러 선, 이 시대에 자꾸만 뒤로 밀리고 마는 어떤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는 까닭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아마도 나는 지친 가운데서도 그런 확신할 길 없이 멀어져 가는 그 마음을, 그런 마음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도 같다. 정말이지,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p.105)을 품어 본다. ..
신신예식장 | 한승일 | 클 결혼은 선택, 예약은 필수 언젠가 TV 모 프로그램에서 노부부가 운영 중이라는 작고 오래된 예식장을 본 적이 있다. 언뜻 보기에도 꽤 연식이 있어 보이는 인테리어가 요즘 시대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유물처럼 보여 외려 이색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다. 그러나 실상 그곳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사람들의 손길과 발길이 이어지 있고 있는 엄연한 삶의 현장이었고, 그 사이에서 오는 간극이 흥미로웠다. 서점 매대에서 『신신 예식장』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프로그램 속 그 예식장일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국에 노부부가 사이 좋게 일당백의 역할을 나눠하며 무료 예식을 해주는 곳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이기에 알아채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1967년 경남 창원에서 신신 예식장을 운영..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이병률 | 달 사랑하고 있는 이들을 향한 시인의 따뜻한 축사 ‘우리는 지난 시간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을 해 왔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날은 또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랑을 하길 바라는가. 나를 둘러싼 이 세계, 여기저기에서 피어나고 지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하여 마주하는 일은 근사하고 아름다운 일이면서도 애잔함을 불러일으키는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더욱이 지난 몇 년 팬데믹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 안에서 사람을 몹시도 그리워한 일이 있는 우리에게 사람 없이 산다는 것이, 사랑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황량하게 하는가를 깨우치게도 했으므로 더욱더 소중하게 다가올 수밖에. 혼자가 혼자에게 | 이병률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이 세계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일, 나는 그 비결을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안에서..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 | 창비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 안내자 양정무의 미술관에는 없는 미술 이야기 인간사에 얽힌 미술 이야기를 4개의 주제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첫 장에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는 고전미술의 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깨운다. 두 번째 장은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미술작품 속 표정에 주목하고, 세 번째 장에서는 왕과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예술작품이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되며 박물관과 미술관이 열린 공간으로 변모해 온 역사를 다룬다. 마지막 장에서는 미술과 팬데믹이라는 주제로 과거 흑사병과 스페인독감이 창궐했던 시기에 많은 이들이 죽음의 공포 안에서 사투하며 일궈 온 예술작품을 살핀다. 특히나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오늘의 우리 모습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