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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7

무진기행 | 김승옥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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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근대인의 일상과 탈일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내면서
1960년대 문학에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대표 단편 10편  

 

 

 

서울의 제약회사에서 전무 승진을 앞두고 있는 '나(윤희중)'는 아내의 권유에 쉼 차, 고향 무진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우연하게 음악 선생이라는 한 여자(하인숙)를 만나게 되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여자를 무진에 그대로 남겨놓은 채, 서울로 돌아간다.

현실에 타협한 선택은 부끄러움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두고두고 스스로를 채근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그 괴롭힘은 합리화 영역 밖의 굴복의 기억인 셈이다. 그러나 이상만을 쫓기에는 우리의 삶을 제약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이상을 추구하는 삶을 바라마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나는 곧잘 주저앉곤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설 속 '나'가 끝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는 것을 힐난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차창 밖으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쓰인 팻말을 바라보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모습을 연민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다. 그간의 삶에서 행해왔던 수많은 ― 현실에 근간한 ― 선택들과 그로 인한 감정적 응어리들을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하고 있으므로.

작가는 '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이라 했다. 소설 속 '나'의 부끄러움이 전이된 듯 내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것, 바로 추체험 탓이리라. 결국 현실에 타협한 선택, 그로인한 부끄러운 감정에 대한 맞닥뜨림은 나로 하여금 실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뭣 모르던 시절 불가해하게만 느껴졌던 부끄러움이, 더이상 불가해한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무엇인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 딱 그 정도 만큼 세월이 흘렀음을, 오랜만에 다시 읽은 「무진기행」이 새삼 깨우치게 만들었다. 후일 「무진기행」이 또 어떻게 읽히게 될지, 사뭇 기대가 된다.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 주도록 하자.    - p.39 「무진기행」

 

 

 

참고로 소설집 『무진기행』에는 표제작인 「무진기행」을 비롯해 「서울 1964년 겨울」, 「생명연습」, 「건(乾)」, 「역사(力士)」, 「차나 한 잔」, 「다산성」 「염소는 힘이 세다」, 「야행」, 「서울의 달빛 0장(章)」이 수록돼 있다.

 

 

 

 

 

무진기행 - 10점
김승옥 지음/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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