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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8

한여름의 추억 | 한가람 | 북로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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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한겨울에 만끽하는 청량하고 눈부신 한여름의 로맨스

 

 

 

지난 2017년의 마지막 날 밤, 한 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기로에서 혼자, 조금은 헛헛한 마음으로 방 안에 켜놓은 향초 불꽃을 멍하니 바라봤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가 딴생각에 잠시 골몰하다가를 반복하다가 얼마 지나지 못해 이번에는 책을 읽어볼까, 소설책을 쥐고 한참을 있기도 했었는데, 이상하게도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날이었다. 그러다 TV를 켰고, 건성으로 보기 시작한 드라마 여주인공이 갑작스레, 것도 아주 느닷없이 죽으면서 바짝 신경을 집중하고 2부를 보기 시작했었다. 그때 본 게 ‘한여름의 추억’이라는 2부작 단막극이었다. 나는 그날 한여름(여자 주인공)을 만나, 그녀에게서 얼마간의 내 모습을 투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꽤 감상적으로 새해를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최근, 그날 본 단막극 대본이 책으로 나온 걸 보고 요 며칠 동안 읽어 보았다. ― 참고로 대본집에는 방송용 드라마 대본 2부작뿐 아니라, 세진과 정선이라는 인물이 더해진 4부작의 원작 대본도 들어 있다. ― 대본집으로 만난 『한여름의 추억』은 단막극과는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는데, 찬찬히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영상을 머릿속에 그리며 읽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작가의 말을 보면, 이 이야기의 시작은 ‘내가 죽으면 슬프다고 울어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답은 의외로 빨리 ‘없을지도’였다고 덧붙이면서. 가만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 대답에 동의할 수밖에 없어서 마음 한 켠에서 밀려오는 씁쓸함을 억누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층 솔깃하게 읽었던 것 같다. 실은 한때나마 그녀를 사랑했던 그들이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 앞에서 보인 무덤덤함에 여름을 대신해 얼마간의 속상함 내지 서운함을 느꼈던 것도 같다. 그러나 그들 인생에 여름의 존재는 이미 과거일 뿐이고 이는 곧 그들 삶에서 그녀는 진작에 죽은 사람이었으므로 그들의 무심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또 ‘다 끝나버린 내 인생에 희망이 찾아온다면?’ 그건 ‘연애잖아’라는 답을 근간으로 당초 2부작이었던 것을 4부작 대본으로 완성했다고도 덧붙인다. 설레고 행복했지만 그만큼의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때론 아프기도, 훗날 후회하기도 했던 한여름의 모습은 우리 각자와도 닮아서, 그녀의 죽음 뒤로 남겨진 풍경들이 한층 마음을 아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이제와 생각해 본다. 어느새 그녀를 통해 상상해 버리고 말았으므로……. 그러나 ‘난, 빛나고 아팠어. 모두 네 덕분이야.’라고 말하는 여름의 진심 어린 한마디가, 그 의젓함이 나를 도리어 위로했다.

 

그렇게 내가 읽은 『한여름의 추억』은 다 큰 어른이지만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서툴 수 밖에 없었던 스스로의 지난날을 보듬고, 내친김에 잠시 숨 고르며 다가올 앞날의 - 역시 처음이라서 서툴고 낯설 - 모든 것들에 맞서 나갈 수 있는 얼마간의 힘을 주는, 어른들의 성장통과도 같은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한여름, 그녀는 이제 사라졌지만. 그래도 다른 이름을 한 그녀와 닮은 존재는 이 세상에 셀 수 없을 터다. 나를 포함해서.

 

 

 

“엄청 빛났었던 것 같은데 단숨에 초라해졌어. 꼭 누가 불 끄고 가버린 것 같애. 분명… 사방이 빛이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 이렇게 별거 아닌 나를. 한때라도 빛나게 해준 당신. 감사합니다.”    - p.105, 106 

 

 

 

 

한여름의 추억 - 10점
한가람 지음/북로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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