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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8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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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알라딘]

 

 

 

“내 詩가 여러분에게는 ‘위로’의 언어이기를,
내게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기를 소원합니다.”

 

 

 

날이 춥다는 핑계로 겨우내 걸렀던 산책을 나갔다. 사월 첫날의 얘기다. 아침 공기는 선선했지만 그렇다고 움츠러들 정도는 아니라서 오히려 상쾌했다. 작년 봄과 여름, 가을을 보내면서 한 번씩 거닐었던 시간들이 나에게는 소확행(小確幸)을 가져다준 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에, 조금 더 이불 안에서 머물고 싶은 한 켠의 마음을 뒤로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이렇게 적고 나니, 뭐 대단한 산책이라도 하는 양 들리기도 해서 열없긴 한데, 정말 별 게 없긴 하다. 뒷산의 흙길을 한 시간 남짓 거닐다가 볕이 좋은 벤치에 앉아 책을 넘기다 오는 일이 전부니까.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이 생각 이상으로 기분을 맑게 한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나무와 꽃들에 눈길을 주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지적이는 새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하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을 싱그럽게 할 수가 없는 거다. 무엇보다 눈을 지그시 감았는데도 어쩌지 못하고 새어 들어오는 햇살의 눈부심과 섬세하게 피부에 와닿는 바람의 결을 느끼는 시간이 참 좋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그날의 산책길을 함께했던 시집이다. 살짝 달뜬 마음이 더해져 읽은 시들은 한결 외로우면서도 그 외로움이 쓸쓸하기 보다는 외려 희망적이었다.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새와 바람도 있는 시의 세계처럼,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도 나 혼자만이 우두커니 서 있는 게 아니라는 위로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이 같다면, 서로가 무엇이든 구애받지 않고 기꺼이 상대의 배경이 되어주는 이 자리가 그저 기꺼울 따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완성된 풍경은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일상 속 아주 잠시지만, 그래도 이런 찰나의 순한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미운 생각들을 차근히 몰아내고 마음을 한결 깨끗이 한다고 믿는다. 

시를 읽으며 나는 그 믿음의 두께가 점차 두터워지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기쁨들로 충만해진 나를 조금 더 좋아해 보려고 한다. 시가 선사하는 순기능이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10점
도종환 지음, 송필용 그림/알에이치코리아(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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