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책/2014

나목 | 박완서 | 세계사

반응형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작가가 가장 사랑하고 소중히 한 첫 작품
스무 살, 순수하고 젊은 날의 황량한 기억

 

 

 

『나목』은 박완서 작가의 첫 장편소설로도 유명하지만, 화가 박수근과의 인연을 토대로 창작했다고 하여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 PX에서 근무하다가 우연히 초상화부 화가로 박수근이 들어오게 되면서 생긴 인연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어짐의 길이가 채 1년에도 못 미친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려봤을 때, 작가 박완서에게는 그 만남이 꽤 강렬하게 남아있었던 듯싶다.

 

사실 박수근에 대한 언급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도 나온다. 옥희도라는 이름을 빌려 등장시킨 『나목』과 달리, 실명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데, 박수근이 남긴 작품 외적인 부분, 그러니까 당시 생활인 박수근의 삶을 읽는다는 의미에서 꽤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내가 몽상한 천재적인 예술가는 아니었다. 그가 만약 천재였다면 사는 일을 위해 예술을 희생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예술보다는 사는 일을 우선했다. 그가 가장 사랑한 것도 아마 예술이 아니라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사는 일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재주로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뿐이었다.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중에서

 

 

 

예술보다는 사는 일을 우선했던 박수근(朴壽根). 그 어떤 특정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채, 간간이 국전을 통해서만 자신의 작품을 드러냈던 그였기에 온전하게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일궈낼 수 있었고, 그 덕택에 화강암 재질의 투박한 마티에르 기법을 그의 이름과 함께 연상하는 일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특히나 당시 가난과 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질곡의 삶을 살아냈던 그가 서민들의 생활상을 화폭에 담은 일은 사는 일을 우선했던 박수근에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그러기에 그 따뜻함과 애틋함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근원적 힘이었지 않을까.

 

다시 『나목』으로 돌아와서, '줄거리는 허구이니 어디까지나 소설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티브가 된 박수근의 모습을 옥희도에게서 찾게 되는 그야말로 작가의 의도에 반하는 읽기를 하고 말았음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것은 드라마 속 두 인물의 엇갈린 사랑을 어떻게든 엮어 주고 싶은 팬심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분명한 건, 소설 속 경아와 옥희도가 살아낸 그 무섭고도 불안했던 시기의 삶이 작가 박완서가, 화가 박수근이 온몸으로 이겨냈던 그 삶과 결코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봄이 찾아 오리라는 믿음을 결코 내버리지 않았다는 희망 역시도.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故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늘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 『나목』 중에서

 

 

 

 

 

나목 - 10점
박완서 지음/세계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