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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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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비 | 미야시타 나츠 | 위즈덤하우스 기억하지 못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해도, 우리 둘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우리가 함께 보낸 오늘이 내일이면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라진다…면?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시리고, 또 아려 온다. 그것은 곧 일상 속 기쁨과 슬픔을 비롯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소소한 감정들을 공유할 수 없다는 데에 대한 진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일 것이다. 소설 속 유키스케와 고요미 사이에서 흐르는 시간들은 오직 유키스케의 기억에서만 저장되고 있다. 그로 인한 답답한 마음에 그녀에게 모진 말을 하기도 하는 유키스케지만, 결국 그런 고요미와의 삶을 기꺼이 받아 들이기로 한다. 그것은 둘이 함께 하루하루 진심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진실,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것이라는 굳은 믿음 덕분에 가능했으리라. 어느 날의 우연한..
징비록 | 류성룡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역사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라 오늘에 되새기는 임진왜란 통한의 기록 임진왜란과 일제 치하 36년으로 대표되는 이웃나라 일본과의 껄끄러운 역사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선명하게 우리 마음속에서 각성되고 있는 근래다. 지난 2018년 10월 말,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은 2019년 한반도를 향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를 비롯한 3개 품목 수출 규제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에 우리 정부는 한국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 이후 조건 부 연기 - 과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맞대응한 바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 안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노 재팬(NO JAPAN)을 외치며 여행 자체는 물론, 불매 운동을 독려하는 등 나라 안은 연일 뜨거웠다. 여기에 2019년 12월 중국..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 문학동네 찌를 듯 무자비하면서도 따스한 햇빛처럼 황량한 폐허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내는 손길처럼 끝인 듯 시작을 예고하는, 아직은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 나는 알고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이따금 생각한다. 어제는 알았던 것이 오늘은 알지 못하게 될 수 있고, 내일이면 알 수 있으려나 싶었던 것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불확실성, 그것이 이 세계에 발 딛고 있는 모든 존재들의 숙명, 삶이란 것의 속성이라 여기면서. 단편 「모르는 영역」에서 부녀 관계인 명덕과 다영 사이에는 어떤 거리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상대방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한 채 오해하고 서운해하기도 한다. 허나 서로를 향한 애정,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기꺼이 알고자 하는 노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 그 점이 매우 ..
이방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 뫼르소가 아랍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던 그 순간을 되뇌어 본다. 레몽에게 휘둘렀던 칼을 재차 꺼내 든 아랍인의 잘못이었을까, 그때에 칼날 위로 강하게 내리쬐던 태양의 잘못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 비록 어떠한 의도도 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 상대가 꺼낸 칼날 위 반사된 빛을 어쩌지 못하고 권총을 꺼낸 뫼르소의 잘못이었을까. 이 일련의 상황은 재판장에서 피고인 측 증인대에 올랐던 셀레스트가 반복하여 말했듯, ‘하나의 불행’이라고 밖엔 설명할 길 없는 아주 지독한 불행의 한 순간이었음에 분명하다. 이후 뫼르소는 모든 자유를 박탈한 채, 사형에 처해질 날만을 기다리는 처지로 전락한다. 그렇게 이 세계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돼 버린 뫼르소. 무엇..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 마스다 미리 | 이봄 적당히 즐겁고 나름대로 괜찮은 어른의 나날들 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의 글들이다. 일상 속 에피소드는 물론 그때그때의 감정들에 충실하면서도 과장 없이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있는 솔직함이 돋보이는 까닭이다. 더욱이 여기에 묶인 글들은 그녀가 삼십 대 후반에서 마흔을 맞이하는 시기에 적은 것들이어서 이 무렵을 통과하고 있는 여성들이 읽는 다면 한층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하리라. 그녀의 만화와 에세이를 좋아해서 여태껏 꽤 많은 책들을 읽어 왔는데, 그 안에서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그녀를 알게 해 준 첫 책인 데다가 가볍지만 긴 여운을 남긴 만화이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아끼고 있다. 여기에 『주말에 숲으로』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책 중의 하나인데, 이 무렵의 나 역시 자연이 주는 치..
충실한 마음 | 델핀 드 비강 | 레모 어둠 속에 내미는 손에 관한 이야기 중학교 선생인 엘렌은 유독 그늘이 보이는 한 학생(테오)이 마음에 걸려 나름의 애를 써보지만 녹록지 않다. 이혼한 부모를 둔 테오는 양 쪽을 오가는 불안한 생활을 이어 가는 처지로 친구 마티스와 마시는 술이 유일한 위안거리다. 마티스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음주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친구인 테오를 모르는 체하지 못한다. 마티스의 엄마인 세실은 아들과 어울리는 테오가 탐탁지 않은 한편 남편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무렵부터 혼잣말 증세를 보인다. 그리고 이들 네 인물에게는 어린 시절 받은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물론 열두 살의 테오와 마티스에게는 당면해 있는 현재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미 어른이 된 엘렌과 세실 역시 그것을 과거의 일로만 접어..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 백수린 | 마음산책 "그 시기만 지나면 그런 불안한 마음은 괜찮아지나요?" 평온했던 일상을 한 순간 깨는 일을 이따금 마주한다. 누가 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한 중대하고도 심각한 일인 경우도 더러는 있지만, 오직 자신만이 감지한 몹시 섬세하고도 여린 감정의 소용돌이일 때가 대개다. 그야말로 한순간에 불현듯 밀려온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마음 어딘가에 쌓아 두어 잠재돼 있던 것이 어떤 일이나 상황을 계기로 불쑥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하는 편이 더 적확하기는 하겠다. 그리고 이 같은 감정의 여파는 스치듯 이내 사라지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한동안의 자신을 사로잡을 만큼 강렬하고도 집요하게 따라 붙기도 한다. 동시에 스스로 조차 그런 감정에 대하여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도 미묘..
침대 밑 악어 | 마리아순 란다 | 책씨 침대 밑에 악어가 있다! #. 악어병 당신의 침대 밑에서 악어를 보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악어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 악어병은 현대인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아주 중요한 단서이자, 지금 몹시 외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병입니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사랑과 관심이라는 약의 처방을 방아야 합니다. 평범한 회사원 JJ는 구두 한 짝을 찾다가 우연히 자신의 침대 밑에서 악어를 발견한다. 더욱이 오직 자신의 눈에만 악어가 보인다는 사실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결국 의사를 찾아간 JJ는 악어병 진단을 받고, '고독, 불안 및 우울증에 탁월한 효능이 있음'이라고 쓰인 알약을 처방받아 온다. 이후 회사 동료인 엘레나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차츰 병세는 사라진다. 침대 밑의 악어라니, 터무니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