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별별책/2020

(53)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강화길 외 | 문학동네 # 01. 「음복(飮福)」, 강화길 모를 수 있는 권리, 그것을 부여받은 특별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얼마큼의 사람들이 알까.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증오하면서도 그 한 사람이 가진 특권을 비밀스럽게, 하지만 더없이 적나라하게 똘똘 뭉쳐 지켜야만 하는 이들을 당신은 과연 아는지. 이해를 구한다는 명목 하의 감정적 착취로 이뤄낸 권리라면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눈물이고 울화 일진 대, 이보다 중한 얘기가 어딨다고 시시하다는 말을…….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 p.9 # 02.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자신이 선 자리에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외적으로 장애물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나아갈 수 있을지,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하..
나와 개의 시간 | 카예 블레그바드 | 콤마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치유의 시간 ‘이것은 블랙독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p.5)로 시작하는 『나와 개의 시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올려다보는 두 눈망울에 어린 꼿꼿함이 아무래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어떻게든 잘 지내보고 싶은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하지만 나에게도 나의 사정이 있듯이 녀석에게도 녀석만의 사정이 있으리라. 그렇기에 서두르지 말고 조심스럽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부터. 블랙독을 통해 마음 안의 우울에 대해여 말하고 있다. 사실 어느 정도의 우울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일상 속 흔한 감정임에도 유독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곤 한다. 흔히 마음의 병으로 불리는 우울증이 그것. 가벼운 감기 정도라면 며칠 앓고 나면 씻은 듯이 나을..
내 휴식과 이완의 해 | 오테사 모시페그 | 문학동네 일 년간 잠을 자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삶에 휴식과 이완을 부여하기 위해 일 년간 잠을 자기로 결심한 주인공을 처음 만났을 때, 문득 최승자 시인의 오래된 시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까무러쳤다 십 년 후에 깨어나고 싶어’라 절규하던 마지막 행이 그것이었다. 차마 죽기는 뭣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일정 기간 동안 지금의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상황을 진정시키고 싶은 욕망. 그것은 차라리 삶에 대한 애착에 기반한 비명이고 몸부림이었다고 나는 이해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일 년간 잠을 자는 계획을 통해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를 – 낯선 작가의 소설 안에서 - 조우했다. 그녀는 과거의 상처, 현재의 고통을 딛고 일어나 더 잘 살아보고자 하는 바람으로 이 ..
계절에 따라 산다 | 모리시타 노리코 | 티라미수 더북 쓸데없이 바쁜 일상,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온몸으로 사계절을 맛보다 다도를 해 온지 어느덧 사십여 년, 그녀는 비로소 말한다. 다도를 배우는 동안만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일상의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더불어 계절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확실히 우리 삶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아주 잠시더라도 일상에 매여있는 온갖 것들로부터 놓여나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할애할 수 있는 고요하고도 차분한 시간, 이를테면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과도 같은 시간 말이다. 그녀에게는 다도를 하는 동안이 그랬다. 마음을 가다듬고 바른 자세로 다도에 집중함으로써 찾아온 평온의 감각 안에서 때때로 흔들리기도 했던 자신을 붙잡을 수 있었기에. 그렇게 다도의 힘으로 그간의 삶을 무사히 살아낼 수 ..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 임민경 | 들녘 그들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문학이 보여주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살의 메커니즘 그 속에서 자살 연구자가 발견한 치유의 실마리 부제 -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 - 에 이끌려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어쩌면 실례보다도 문학 속 등장인물을 통해 헤아리는 편이 이해의 깊이 측면에서 보다 우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것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자살에 대한 뉴스 기사 혹은 주변 소식에는 결정적으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해야만 했던 내면 심리, 그 서사가 누락돼 있는 까닭이다. 반면 문학에는 그것을 스토리의 주요 골조로 할 만큼 상세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감행에 나선 이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우리는 가닿을 수 있으..
녹나무의 파수꾼 | 히가시노 게이고 | 소미미디어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세대를 뛰어넘는 마음, 그렇게 과거와 미래가 이어진다 레이토는 월향신사의 녹나무 지키는 일을 하기로 한다. 고아인 데다가 직업도 없고, 절도죄로 유치장에 수감 중인 처지여서 다른 선택지는 없는 까닭이다. 그렇게 시작된 파수꾼의 일은 의문투성이지만, 녹나무가 어떤 힘을 가졌는지는 오로지 스스로 알아내야만 한다. 레이토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월향신사를 찾는 방문객들과 조우하면서 차츰 녹나무가 지닌 비밀에 다가간다. 소설의 마지막, 치후네는 레이토를 향해 묻는다. 자신이 앞으로 조금 더 살아가도 괜찮을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하여. 이에 레이토는 지금 자신의 기분을 녹나무에 예념해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치후네는 그 마음 씀씀이에 고..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 | 수지 홉킨스∙할리 베이트먼 | F(에프) 엄마가 딸에게 남기는 삶의 처방전 딸은 유달리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밤, 엄마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날을 상상해 본다. 늘 곁에서 자신을 지탱해 주던 엄마라는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딸은 슬픔과 두려움 너머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훗날 엄마가 죽은 뒤에 자신이 참고할 수 있는 지침서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드려 보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엄마가 적고 딸이 그려 완성한 그래픽 에세이 『내가 죽은 뒤에 네가 해야 할 일들』의 시발점이다. 시작은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에서부터다. 이후 세상을 떠난 지 하루, 이틀, 사흘…이 어느새 320일, 550일을 넘어 2만 일에 이른다. 그렇게 엄마가 떠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딸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엄..
페스트 | 알베르 카뮈 | 민음사 위험이 도사리는 폐쇄된 도시에서 극한의 절망과 마주하는 인간 군상 죽음이라는 엄혹한 인간 조건 앞에서도 억누를 수 없는 희망의 의지 194X년 알제리 해안에 면한 평범한 도시 오랑에서 창궐한 페스트를 중심축으로 한 연대기다. 붉은 피를 토하며 비틀대다가 죽어 가는 쥐 떼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정부 당국은 페스트를 선포한다. 연이어 도시 봉쇄를 명하는데,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는 물론 뜻하지 않게 헤어진 연인, 가족들로 인해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 대혼란의 한복판에서 의사이자 서술자인 리유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은 저마다의 신념과 방식으로 재앙에 맞서고자 한다. 페스트라는 짙은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도시, 이 안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마주하는 인간 군상이 낯설지 않다. 작년 말, 중국 우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