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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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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마음속에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해, 우리는 둘만의 비밀 도시를 만들었다 아주 오래전 소년은 소녀를 만났고 함께 도서관에서 일하며 높은 벽에 둘러싸인 세계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 모든 건 한낱 꿈에 불과했던 걸까. 지금 속해 있는 현실 속에서 소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었고, 또렷하게 설명할 수 없는 — 그러나 도서관 꿈만은 선명하게 꾸는 — 어떤 이끌림에 의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도쿄를 떠나 깊은 산간지방의 도서관으로 일자리를 옮긴다. 거기서 전임 도서관장이었던 고야스씨와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며 오랜 시간 자신을 사로잡았던 꿈, 또다른 세계의 현실이기도 했던 벽에 둘러싸인 도시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그 안에서 자연스레 내 안의 세계를 떠올려본다. 저마다 사람들은 발 딛고 있는 세계와는 별개로 ..
몬테로소의 분홍 벽 | 에쿠니 가오리(글)∙아라이 료지(그림) | 예담 행복을 찾기 위해 몬테로소로 떠난 고양이 하스카프의 사랑스럽고 신비로운 여행 이야기! 고양이 하스카프는 꿈속에서 마주한 분홍 벽을 보고 단박에 자신이 있어야 할 곳임을 직감한다. 그리하여 그곳, 몬테로소를 향해 길을 나선다. 이 여정을 좇는 가운데 고양이 하스카프의 용기에 자연스레 반하게 된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나아가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임에도 현실의 나는 쉬이 그러하지 못하고 주저하곤 함을 떠올린 이유리라. 하지만 고양이 하스카프는 현재의 안락함을 과감하게 뒤로 하고 모험을 떠나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분홍 벽에 다다른다. 그러고는 비로소 “온몸이 녹아내릴 것처럼 행복”한 순간을 만끽한다. 이는 목표한 것을 성취해 낸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참된 기쁨일 것이다. 나..
평온한 날 | 김보희 | 마음산책 김보희 그림산문집 초록 그림이 많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반영이다. 그 싱싱한 초록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증거다. 큼지막한 초록 잎을 시원하게 펼쳐 그릴 때면, 작은 체구의 나도 활짝 몸을 펴는 느낌이다. - p.61 제주에 정착한 화가가 그린 그림에는 초록이 넘실댄다. 그 그림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니, 어느새 초록의 싱싱하고 맑은 내음을 들이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덕분에 낮의 조금 산란했던 마음이 진정되며, 그림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묘한 감동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평온한 날』은 화가의 그림뿐 아니라 제주에서의 일상과 그림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어 한층 풍성한 만듦새가 인상적이었던 그림 산문집이었다. 언젠가 그 초록의 그림들을 직접 마주하고 싶다고도 생각하며. 나이 70에..
이게 다예요 | 마르그리트 뒤라스 | 문학동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마지막 작품!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마지막 기록, 『이게 다예요』. 긴 투병 생활 속에서 써 내려간 글을 통해 그녀는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을 고통스러워하며 죽음이 끔찍하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연인에 대한 사랑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한편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충만한 열정 역시 털어놓는다. 그 안에서 자연스레 죽음 앞에 놓인 한 인간을, 그녀의 진솔한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함께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랑이고, 죽음이고, 말이고, 잠자는 것이다. - p.14 「생브누아 거리, 11월 27일 일요일」 이게 다예요 -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고종석 옮김/문학동네
그리움의 정원에서 | 크리스티앙 보뱅 | 1984Books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꾼 작은 글의 정원 크리스티앙 보뱅은 사랑하는 여인 지슬렌을 떠나보낸 뒤 글로써 못다 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런 까닭에 그녀의 부재를 가슴 깊이 슬퍼하면서도 여전히 그는 마음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그녀의 존재를 마주하고 있다. 더욱이 그 문장들은 보뱅 특유의 감각적인 언어 안에서 피어나 오직 그녀만을 위한 “작은 글의 정원”(p.9)을 이루고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덕분에 그 정원 안에서 나는 —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고서 —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오래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되뇌면서. 지슬렌, 이제는 안다. 이제야 네 뜻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네가 없는 삶을 여전히 축복하고,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다. ..
내 이름은 루시 바턴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문학동네 모든 생(生)은 감동이다! 소설가가 된 ‘나’(루시 바턴)는 자신이 걸어온 삶을 돌이켜본다. 그 시작은 1980년대 중반, 9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욕에서 가정을 꾸린 때였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남편을 대신해 상당 기간 연락을 하고 있지 않던 엄마의 병간호를 받아야 했던 상황이었다. 자연히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 안에서 그 시절 가족들과 앰개시라는 작은 시골 마을 그리고 이웃들… 소소한 행복이 있기도 했지만 지독히 벗어나고 싶었던 지난날의 기억이 알알이 살아난다. “지금은 내 인생도 완전히 달라졌기에,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여기면서도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
그러나 나는 내가 꽤 마음에 듭니다 | 이지은 | 스튜디오오드리 하루는 망했어도 여전히 멋진 당신에게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낸 그 밤, 누군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면 꼭 이 책에 쓰인 문장들과 같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문장 안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었다. 「Happy birthday to me」 너는 네가 참 안됐대. 세상의 여분이라서. 무언가 네 몫이다가도 곧잘 잃어버려서. 유일하나 반짝이지 못해서. 운이라고는 신호등 타이밍뿐이어서. 때로는 변명할 기회 없는 미움을 받고 흔한 사랑은 오아시스처럼 멀어서. 나는 알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히 바쁘던 너의 날들을. 네가 욕심이라 이름 붙인 크고 작은, 사실은, 꿈들을. 잊은 척 절대 잊지 않은 것들을. 예컨대 사랑 같은. 네가 알기를 바라. 모든 반짝임은 가뭇없이 사라져가며 네 유일함은 그 공백 속에서라도..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 민음사 고루하고 위선적인 권위에 희생된 순수한 소년의 비극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의지를 짓밟는 제도와 교육에 대한 비판 소년 한스 기벤라트는 총명했고, 그런 까닭에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재능 있는 아이라면 의례히 나아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을 향해 내디뎠다. 그것은 곧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는 일이었는데, 입학의 기쁨과 밝은 장래에 대한 설렘도 잠시, 신학교 생활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삶을 전복시킨다. 결국 신경쇠약 증세로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더는 주위에서 격려하던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냉엄한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그 파국의 여정을 좇으며 수레바퀴 아래서 있던 젊은 영혼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물론 어느 누구도 한스가 잘못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