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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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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씨의 말 1 - 하하하, 내 마음이지 | 사노 요코 | 민음사 심각한 고민도 어느새 훌훌 털어 버리게 만드는 사노 요코의 속 시원한 그림 에세이 시바견 잡종 강아지로 알고 데려와 함께 지냈는데, 커갈수록 닥스훈트의 짧은 다리를 지녔다면..? 이럴 때 반려인은 예상치 못한 외형에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교감을 쌓으며 이미 한 가족이 된 마당에 겉모습이 무슨 소용이랴. 그저 존재 자체로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이외에도 사노 요코만의 솔직 담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에피소들을 만나볼 수 있어 좋았다. 새삼 그녀의 거침없고 명쾌한 이야기에 반할 수밖에 없었달까. 더욱이 정감 가는 그림이 더해져 보다 생생하게 요코 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애정은 가까이에 있는 존재를 아끼는 데에서 생겨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 다산책방 수월한 침묵과 자멸적 용기의 갈림길 그 앞에 움츠러든 한 소시민을 둘러싼 세계 상당히 부당해 보이는 어떤 상황을 목도했을 때, 대개 사람들은 불편한 마음을 뒤로하고 눈감는다. 자기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 아닌 이상, 어느 모로 보나 그 편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므로. 그럼에도 때때로 우리는 마주하곤 한다. 침묵하지 않고 용기 내어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나는 그들 몇몇이 존재하기에 이 세계가 조금이나마 나은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등장하는 빌 펄롱은 그 몇몇 사람 중의 하나였다. 물론 처음부터 용기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에게는 아내 아일린과 그 사이에서 낳은 다섯 명의 딸을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사라진 것들 | 앤드루 포터 | 문학동네 불안하지만 빛나던 시절 청춘, 예술 그리고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들 문득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p.21)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말하자면 상실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제 안의 의지의 산물이기도 했고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기도 했다. 또한 일순 벌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났음을 후일 자각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사라진 것들을 곱씹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상실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때때로 깊은 슬픔과 고통을 수반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것은 — 일말의 후회와 자책, 아쉬움을 담고 있기는 했으나 —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희석됐다. 다만 그 가운데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애써 지난날의 무언가를 돌이켜 보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 필리프 들레름 | 문학과 지성사 삶에 스민 소박한 즐거움에 대한 서른네 편의 보석 같은 에세이 일상에 깃든 소소한 행복의 순간을 전하고 있다. 여기 적힌 서른네 개의 소제목은 저자가 일상 안에서 마주한 작은 기쁨에 대한 목록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하루 하나씩 두근대며 어드벤트 캘린더를 여는 마음으로 그 빛나는 순간을 엿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른 아침에 크루아상을 사러 가고 완두콩 깍지를 까며, 첫 맥주의 한 모금을 마시면서와 같이 사소하고 평범한 순간에도 보물을 발견하듯 기쁨의 찰나를 놓치지 않는 섬세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그것이다. 어쩌면 삶 속 행복이란 그것을 느낄 준비가 된 존재에게만 허락된 신의 선물은 아닐는지 생각해본다. 깜깜한 방 안에서 신비로움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뒤섞인다. 모든 것이 가볍..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패트릭 브링리 | 웅진지식하우스 인류의 위대한 걸작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한 남자의 삶과 죽음, 인생과 예술에 대한 우아하고 지적인 10년의 회고 형을 잃은 저자는 뉴욕의 마천루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도 유망한 회사에서 나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기로 한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세상을 등지고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p.69)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정에 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이제 내가 할 유일한 일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망을 보는 것. 두 손은 비워두고, 두 눈은 크게 뜨고, 아름다운 작품들과 그것들을 둘러싼 삶의 소용돌이 속에 뒤엉켜 내면의 삶을 자라게 하는 것. 이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 p.33, 34 「1장 -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
호로요이의 시간 | 오리가미 교야 외 | 징검돌 일본 여성작가 5인이 술을 소재로 그 종류만큼 다채롭고 해가 갈수록 깊어지는 인생을 그려낸 단편집 술을 소재로 한 일본 여성작가 5인의 단편집이다. 권남희 번역가의 산문집 『스타벅스 일기』에서 “주량은 약하지만, 나도 술을 좋아해서 술 이야기를 번역하는 일이 즐겁기 그지없다”(p.19)는 문장을 읽고서, 나 역시 호로요이(기분 좋게 취한 느낌)의 시간을 애정하기에 더욱이 『낮술』의 작가 하라다 히카 외에는 초면인 작가 구성에 호기심을 느껴 읽어 보았다. 결과적으로는 신선하고 유쾌하게 읽었는데, 무엇보다도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는 사카이 기쿠코의 단편 「첫사랑 소다」는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이 날 정도로 재밌게 읽어 그녀의 또 다른 소설 역시 소개되기를 기다리게 됐다. # 01. 「그에게는 쇼콜라와 비밀의 ..
에이미와 이저벨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문학동네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을 선택하는 데 필요한 용기와 어려움에 관해 빛나는 고결함과 유머로 써내려간 소설 딸 에이미와 엄마 이저벨은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다. 하지만 그 관계에는 미묘한 어긋남이 자리한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친밀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도무지 가 닿을 수 없는 간극이 모녀가 보낸 무더운 계절 안에서 한층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질식할 듯 뿜어내는, 그럼에도 이미 익숙해져 버린 유황 냄새에 장악당한 그녀들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만큼이나 끈질기고도 지독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바보 같은 자신들의 삶이 고단하고 구역질났지만 서로 찰싹 들러붙어 있”(p.313)을 수밖에 없다고 한 이 관계에 대하여 자연스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비단 모녀 관계의 일만은 아니..
스타벅스 일기 | 권남희 | 한겨레출판 세상을 만나는 공간 스타벅스, 사람들과의 느슨한 연결 속 쓰고 읽고 헤아린 계절들 번역가이자 작가인 권남희의 스타벅스 일기는 자칭 집순이인 그녀가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딸 마저 독립하게 되면서 ‘빈둥지증후군’을 겪었음을 털어놓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다가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날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를 찾았다”(p.6)고도 덧붙이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스타벅스에서의 하루 일기는 어느새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되었다. 한 잔 음료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개방된 장소인 탓에 스타벅스라는 공간은 늘 변화무쌍하다. 글쓰기 작업과 번역 일을 하는 작가처럼 해야 할 일 혹은 저마다의 스터디를 하고 있는 반면 담소를 나누러 오는 사람부터 단체로 몰려오다시피 해 시끌벅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