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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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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 무라카미 하루키(글)∙카트 멘시크(그림) |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X 카트 멘시크 아트 컬래버레이션으로 만나는 매혹적인 단편! 스무 번째 생일날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소녀. 평범한 하루를 보내리라는 예상과 달리 매니저의 병원 행으로 사장이 머무는 방으로 식사 서빙을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일 선물로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데. 새삼 매년 찾아오는 생일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해마다 무언가를 기념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히 기억해야 마땅하다는 의미일 것이고, 그중의 하나가 바로 태어난 날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성대한 축하를 받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소와 다름없는 조용한 일상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물론 『버스데이 걸』의 소녀처럼 의외의 누군가로부터 예상치 못한 축하..
미겔 스트리트 | V.S. 나이폴 | 민음사 좌절과 광기로 얼룩진 식민지 사회 미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비극적 초상을 한 소년의 눈을 통해 희극적 터치로 그려 낸 연작 소설 트리니다드 섬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의 빈민굴 미겔 스트리트. 여기 살고 있는 소년 ‘나’는 자신의 눈에 비친 거리의 사람들을 열여섯 편의 단편을 통해 그리고 있다. 그들 대다수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거나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거하게 술을 마시고 도박을 즐기며 아내와 자식을 구타하기도 한다. 또한 불륜을 저지르고 도둑질을 일삼으며 경찰에 연행되는 일도 빈번하다. 소년은 “그러나 거기서 살고 있던 우리는 그 거리를 하나의 세계로 여기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각기 특유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p.101)고 회고..
묵주알 | 나가이 다카시 | 바오로딸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수년 전 우연찮게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인 나가이 다카시(永井隆)를 알게 됐다. 나가사키 원폭의 현장에서 두 아이와 살아남았지만, 아내를 잃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였다. 그는 참혹한 현장 속에서도 낙담하기보다는 나가사키의과대학의 교수로서 아픈 사람들을 도우며 그날의 참상을 기록함으로써 제 소임을 다하고자 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바오로딸 다시 읽고 싶은 명작 중 하나인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통해 같은 시리즈에 있던 그의 『묵주알』을 알게 돼 읽어 보게 된 것이다.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실로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을 가져왔다. 나가이 다카시 역시 참화의 현장 속에서 아내와 집은 물론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결혼생활 | 임경선 | 토스트 결혼은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하다 만난 지 3주 만의 급작스런 청혼과 고작 석 달간의 짧은 연애에서 출발한 20년 간의 결혼생활을 되짚어 본다. 그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하”(p.122)기도 했던 나날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저마다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 안에서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대체 누가 결혼생활을 ‘안정’의 상징처럼 묘사하는가. 결혼이란 오히려 ‘불안정’의 상징이어야 마땅하다. - p.77 아무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결혼이 나를 압도한 이유는, 그것이 내가 누군가로부터 격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한 순간의 착각이라 해도, 나중에 오판으로 결론 난다 해도 말이다. 100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결혼의 불리함과 비합리성을 설득시킨다 해도..
우동 한 그릇 | 구리 료헤이∙다케모도 고노스케 | 청조사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뭉클한 감동과 웃음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기 쉬운 것이 요즘 세태인 까닭에 두 편의 이야기는 씁쓸하지만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은 냉소적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곳이고, 또 그 사회가 때로는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곳곳에 타인을 배려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씨 따뜻한 이들이 존재하는 연유이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편의 이야기가 그러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먼저 「우동 한 그릇」에서 섣달그믐날 밤 우동집에 들어온 세 모자는 한 그릇을 주문하는데, 넉넉지 못한 형편 탓임을 알아챈 주인은 몰래 양을 넉넉히 해 테이블에 올린다. 더욱..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 문학동네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며 온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7편의 긴 편지 표제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포함하여 일곱 편이 수록돼 있다. 모두 읽고 나서 깨달은 것이 내가 유독 인물들의 마음을 가늠해 보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어찌하여 그들이 품었던 마음에 이토록 침잠해 있던 걸까. 마음속에 자리한 어떤 기억이 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알게 모르게 영향 미치고 있음을 조금은 쓰린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갑자기 매서워진 계절의 탓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나는 기억의 자리를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 01.「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자신이 선 자리에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외적으로 장애물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나아갈 수 있을지, 사라..
모든 삶은 흐른다 | 로랑스 드빌레르 | FIKA 삶의 지표가 필요한 당신에게 바다가 건네는 말 『모든 삶은 흐른다』의 저자 로랑스 드빌레르는 바다를 바라보며 삶을 이해하라고 한다.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 있으면 어렵고 힘든 순간도 있기 마련인 삶 속에서 “파도처럼 살아가면 그뿐이”(p.50)라고. 그것은 곧 물러가고 밀려오는 것에 개의치 않는 파도처럼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이든 자연스럽게 마주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한 척의 배에 몸을 실은 나는 이 배의 선장이 되어 닻을 올린다. 그러나 순항도 잠시, 잔잔했던 물결이 이내 거칠어진다. 휘몰아치는 태풍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암초나 거대한 빙하에 부딪히기도 하며, 배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푸른 바다가 한순간에 좌..
로마 이야기 | 줌파 라히리 | 마음산책 "몇 번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단테 알리기에리」의 ‘나’는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광장 위 맑은 하늘을 바라본다. 그때에 친구 중 하나가 로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참 엿 같은 도시야.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워.”(p.279)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로 쓴 두 번째 소설 『로마 이야기』를 관통하는 문장이자, 그녀의 진심이 물씬 담긴 표현이라 여기며 이 책을 덮었던 것부터 적어둬야겠다. 정말 아름답지만 그에 상응하는 증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애증이야말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솔직한 감정 중의 하나일 것이므로 한층 이 문장에 마음을 빼앗겼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줌파 라히리라는 작가를 떠올리면, 인도계 이민 2세대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했고 이후 이탈리아 로마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