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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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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스트리트 | V.S. 나이폴 | 민음사 좌절과 광기로 얼룩진 식민지 사회 미겔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비극적 초상을 한 소년의 눈을 통해 희극적 터치로 그려 낸 연작 소설 트리니다드 섬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의 빈민굴 미겔 스트리트. 여기 살고 있는 소년 ‘나’는 자신의 눈에 비친 거리의 사람들을 열여섯 편의 단편을 통해 그리고 있다. 그들 대다수는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거나 아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거하게 술을 마시고 도박을 즐기며 아내와 자식을 구타하기도 한다. 또한 불륜을 저지르고 도둑질을 일삼으며 경찰에 연행되는 일도 빈번하다. 소년은 “그러나 거기서 살고 있던 우리는 그 거리를 하나의 세계로 여기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각기 특유의 개성을 지니고 있었다”(p.101)고 회고..
오리엔탈 특급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 황금가지 전 세계 미스터리의 역사를 재창조한 추리 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를 대표하는 작품만을 모은 에디터스 초이스 폭설 속에 고립된 기차 안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탐정 푸아로는 시체에서 발견된 상처와 승객들의 심문으로 범인을 밝히고자 몰두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또 다른 대표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마찬가지로 - 각기 기차와 별장이라는 -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 다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경우 연쇄 살인 속에 서로가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통해 충격과 공포에 빠진 사람들의 심리를 크게 부각한 반면, 『오리엔탈 특급 살인』은 공동의 적을 향한 연대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바라는 바를 이뤄내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를 증명함으로써 완벽한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 황금가지 전 세계 미스터리의 역사를 재창조한 추리 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를 대표하는 작품만을 모은 에디터스 초이스 열 명의 사람들이 오웬 부부 소유의 병정 섬에 초대된다.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각기 다른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저마다 누군가의 죽음에 연루됐음에도 법으로는 심판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저택에 들어선 사람들은 곧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고, 액자 속 병정에 관한 오래된 자장가 가사에 맞춰 한 명씩 죽임 당하게 된다. 식탁에 놓여 있던 열 꼬마 병정 인형의 수 역시 차례로 하나씩 사라져 간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1939년작 임에도 근래 발표된 여느 추리소설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건재함이 단연 돋보인다. 추리소..
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 | 문학동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프랑켄슈타인이 과학기술로 자멸해가는 인류에 던지는 최초의 경고 소설 속 주인공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가 창조한 피조물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극심한 혐오감 속에서 좌절과 분노를 거듭하다 결국 창조주를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그의 가족을 하나씩 죽여 나간다. 문득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뜻에 따라 또 다른 괴물, 그러니까 동반자를 만들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괴물은 그렇게만 해준다면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고 가급적이면 인간 사회 바깥의 외진 곳에서 살아가겠다고 애원하다시피 말하지 않았었던가.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이와 같은 참담한 비극은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제안임..
케이크와 맥주 | 서머싯 몸 | 민음사 실존 인물, 문단의 내막 적나라하게 묘사해 세간에 파장을 일으킨 풍자 소설 성공과 창작의 곡예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케이크와 맥주에 부합하는 삶을 살았던 로지. 세간 사람들은 그녀의 부도덕함을 수군댔지만, 정작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저 자신이 관심 있고 흥미 있는 것을 향해 나아갔을 뿐.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철없는 여인이라고 해두기에도 마땅치 않다. 그녀가 내뱉은 말에 담긴 가치관이 확고한 까닭이다.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방식대로 삶을 충실하게 이끌어 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다른 남자에게 고가의 선물을 받아온 로지에게 어셴든은 분개하며 따지려 들지만, 그녀는 ‘우아하고 상냥하게’ 대응한다. “아이 참, 왜 다른 사람들 일로 속을 ..
클라라와 태양 | 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인간 소녀 조시와 그녀의 동반자가 된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 두 존재가 그려내는 가슴 저미는 슬픔과 사랑,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의 이야기 인공지능 로봇에게 마음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가당치 않은 소리라고 여기면서도 클라라에게만은 예외를 두고 싶어 졌던 건, 어째서일까. 제 아무리 인간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뛰어난 에이에프라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더욱이 일체의 감정이 배제된 로봇 제품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 에이에프 클라라가 자신을 택한 아이를 위해 애쓴 모든 것들을 ‘마음’을 빼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기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클라라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뒤에 우연히 재회하게 된 매니저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시를 위해서 제가 할 ..
1984 | 조지 오웰 | 민음사 21세기, 고도의 정보화 사회에 던지는 조지 오웰의 경고 거대한 지배 체제하에 놓인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파멸해 가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디스토피아 소설 거대한 암흑세계에 발 디딘 기분이 참담하다.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며 검열과 세뇌를 일삼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잠시나마 상상해 본 것이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p.114)를 갈망하던 윈스턴 스미스는 결국, ‘행복한 몽상에 잠겨’(p.416)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p.417)히는 순간에 다다른다. 그것은 곧 영혼의 말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체제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저항하며 자유를 희망했지만, 함정에 빠져 거대한 지배 세력에 끝내 굴복하고 말았으므로. 그렇기에 ..
브레이크 다운 | B.A.패리스 | arte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결국 스스로도 의심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 심리스릴러 폭우가 내리던 밤, 숲속 지름길로 오지 말라는 남편의 말을 그녀는 들었어야 했다. 그도 아니었다면, 폭우 속 멈춰 선 차량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기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쪽에서 먼저 청하지 않을까 싶어 잠시 머뭇대기는 했으나, 어떠한 반응도 감지하지 못한 그녀로서는 가던 길을 그저 갈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 숲에서 여자가 시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어둠 속 폭우 탓에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여자는 최근 사귀게 된 지인으로 밝혀진다. 그때에 그녀가 느꼈을 공포와 자책, 혼란의 감정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더욱이 사건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