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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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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김멜라 외 | 문학동네 # 01. 「이응 이응」, 김멜라 할머니와 반려견 보리차차를 잃고 ‘나’는 이응이 보급된 세계 안에서 살아가며 포옹을 나누는 클럽 ‘위옹’에 가입한다. 그 결정은 어쩌면 “그 짓이 맞나 틀리나 긴가민가할 땐 똑같은 짓을 한번 더 해”(p.10) 보라 했던 생전 할머니의 영향일 수도 있겠다. 결과적으로도 ‘나’에게 그 조언은 제법 유용했던 것 같다. 이응의 쓸모가 단순한 욕망 해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 교류를 통해 맺은 관계가 가져온 상실의 빈자리를 채워줄 획기적 대체품이 될 수도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인위적 설정과 그것의 터득, 나아가 해결을 위한 소모품이라는 지점에서 역시 불편해지고 만다. 저항감이 있더라도 그렇게 체득한 것은 결국 누군가를 끌어안고 싶은 욕망 앞에서 무용해지며 또 한 번의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 문학동네 스스로의 몫을 고민하며 온 마음으로 써내려가는 7편의 긴 편지 표제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포함하여 일곱 편이 수록돼 있다. 모두 읽고 나서 깨달은 것이 내가 유독 인물들의 마음을 가늠해 보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어찌하여 그들이 품었던 마음에 이토록 침잠해 있던 걸까. 마음속에 자리한 어떤 기억이 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알게 모르게 영향 미치고 있음을 조금은 쓰린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었던 것도 같다. 갑자기 매서워진 계절의 탓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 나는 기억의 자리를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 01.「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자신이 선 자리에서 가능한 한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외적으로 장애물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나아갈 수 있을지, 사라..
너무나 많은 여름이 | 김연수 | 레제 이 삶은, 오직 꿈의 눈으로 바라볼 때 오롯하게 우리의 삶이 된다 김연수 작가가 낭독회를 위하여 쓴 스무 편의 짧은 이야기를 엮은 소설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 나는 “그들이 낮 동안 열심히 일해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밤의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내게 하는 것. 나는 그들이 모여서 듣는 내 이야기도 그런 것이 됐으면 싶었다”(p.297)는 소망을 담은 이야기들 안에서 우리가 걸어온 시간, 그리고 마주해 나가야 할 시간들에 대해 한참을 서성였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시기를 경험한 뒤의 일이기도 해서 보다 의미가 있었는데,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p.298) 고도했던 작가의 말 역시 같은 맥락이었으리라 짐..
눈부신 안부 | 백수린 | 문학동네 슬픔의 터널을 지나 쏟아지는 환한 빛처럼 긴 시차를 두고 도착한 애틋한 화해의 인사 언니를 사고로 잃고 아빠와 헤어져 엄마, 동생과 함께 독일로 떠났던 해미를 생각한다. 시한부인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고자 한수, 레나와 머리를 맞대어 골몰했던 나날, 이후 독일을 떠나고도 한수의 실낱 같은 희망을 위하여 거짓 편지를 써야 했던 해미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언니의 죽음 앞에서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소녀는 이번에 만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죽음 앞에 놓인 선자 이모와 그녀의 아들 한수를 위하여 그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던 것이리라. 그로 인한 죄책감을 떠안을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해미의 간절한 마음에 나는 얼마나 가닿았을까. 마주한 상실의 아픔은 때때로 한 인간의 삶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각각의 계절 | 권여선 | 문학동네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왜 기억하는가 우리가 왜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에 대한 권여선의 깊고 집요한 물음 우리가 말하는 기억은 무엇이고 무얼 위한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스스로를 살아가게 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써 우리 각자는 기억이란 것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는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하여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우리의 기억은 나아가고, 때로는 굴절되고 왜곡되기도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한 어느 순간의 일들이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달리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이다. 동시에 우리는 기억을 반추하며 퍼즐을 맞춰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인연을 이어가는 한편 인연의 끈을 놓기 위하여 기억의 파편을 저 멀리 흘러 보내기도 하는 존재들이라는 ..
젊은 느티나무 –강신재 소설선 | 강신재 | 문학과지성사 강신재 소설선 1950, 60년대 한국의 대표적 여성작가 강신재의 중단편집으로 표제작인 「젊은 느티나무」를 비롯 총 열 편이 실려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처해있는 난처한 삶 속에서 제 나름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지만, 속 시원한 결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녀들 자신의 나약함 혹은 어리숙함이라기 보다는 가정과 사회 안에서 여성이라는 존재에게 부여되고 허락된 역할의 시대적 한계에서 기인한다고 이해해야 할 성싶다. 다만 그럼에도 그들이 마냥 제 처지를 자조하고 체념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희미한 희망을 본 듯도 하지만 말이다. 「안개」에서 성혜는 남편의 눈을 피해 쓴 소설이 유명 잡지에 실리자 기뻐하면서도 불쾌해 할 남편을 떠올리며 안절부절못했고, 「해방촌 가는 길」의 기애는..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이미상 외 | 문학동네 # 01.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이미상 오래전 겨울날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이 함께했던 짧은 여행은 각자의 뇌리 속에서 저마다 잊히지 않을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아가 어느 한순간을 너머 통으로 봉인돼 기억의 방에 자리할지도 모를 일이다. 가령 무경이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하고서 “고모의 그 일을, 내가 했어요.”(p.38) 했을 때 고모는 “너는 내 딸이구나.”(p.38) 했고, 그 순간 난생 처음 존댓말로 목경이 “고모, 나 열나요.”(p.38) 했던 순간이 그렇다. 무경의 ‘한 방’에 대한 목경의 본능적 위기의식이 표출되던 때…. 훗날 고모의 상중 들른 카페에서 목경이 소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여자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그 겨울을 자연스레 떠올렸으리라 짐작해본다..
크리스마스 타일 | 김금희 | 창비 크리스마스 타일처럼 이어 붙인 우리들의 마음, 열심히 사랑하고 이별한 모든 이들을 위한 소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크리스마스이기에 조금은 더 오래 기억될 시간을. 대개 사람들은 평소보다 설레면서도 따뜻한, 애틋하면서도 고마운, 황홀하면서도 아름다운 하루를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그런 기대를 품고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것이라고. 그러나 바람과 달리 아픔과 슬픔이 있고 실패와 좌절, 당혹감과 죄책감을 맞닥뜨리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일곱 편의 연작 속 인물들을 통해 마주한다. 요 며칠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의 우리들도 마찬가지리라. 그럼에도…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의 기적을 소망한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누군가의 머리 위로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