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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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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일기 | 권남희 | 한겨레출판 세상을 만나는 공간 스타벅스, 사람들과의 느슨한 연결 속 쓰고 읽고 헤아린 계절들 번역가이자 작가인 권남희의 스타벅스 일기는 자칭 집순이인 그녀가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딸 마저 독립하게 되면서 ‘빈둥지증후군’을 겪었음을 털어놓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다가 더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날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를 찾았다”(p.6)고도 덧붙이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스타벅스에서의 하루 일기는 어느새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되었다. 한 잔 음료면, 어느 누구에게라도 개방된 장소인 탓에 스타벅스라는 공간은 늘 변화무쌍하다. 글쓰기 작업과 번역 일을 하는 작가처럼 해야 할 일 혹은 저마다의 스터디를 하고 있는 반면 담소를 나누러 오는 사람부터 단체로 몰려오다시피 해 시끌벅적..
평범한 결혼생활 | 임경선 | 토스트 결혼은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하다 만난 지 3주 만의 급작스런 청혼과 고작 석 달간의 짧은 연애에서 출발한 20년 간의 결혼생활을 되짚어 본다. 그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하”(p.122)기도 했던 나날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새 저마다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 안에서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대체 누가 결혼생활을 ‘안정’의 상징처럼 묘사하는가. 결혼이란 오히려 ‘불안정’의 상징이어야 마땅하다. - p.77 아무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결혼이 나를 압도한 이유는, 그것이 내가 누군가로부터 격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한 순간의 착각이라 해도, 나중에 오판으로 결론 난다 해도 말이다. 100가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서 결혼의 불리함과 비합리성을 설득시킨다 해도..
평온한 날 | 김보희 | 마음산책 김보희 그림산문집 초록 그림이 많아진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반영이다. 그 싱싱한 초록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증거다. 큼지막한 초록 잎을 시원하게 펼쳐 그릴 때면, 작은 체구의 나도 활짝 몸을 펴는 느낌이다. - p.61 제주에 정착한 화가가 그린 그림에는 초록이 넘실댄다. 그 그림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니, 어느새 초록의 싱싱하고 맑은 내음을 들이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덕분에 낮의 조금 산란했던 마음이 진정되며, 그림에는 치유의 힘이 있고 묘한 감동이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평온한 날』은 화가의 그림뿐 아니라 제주에서의 일상과 그림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어 한층 풍성한 만듦새가 인상적이었던 그림 산문집이었다. 언젠가 그 초록의 그림들을 직접 마주하고 싶다고도 생각하며. 나이 70에..
그러나 나는 내가 꽤 마음에 듭니다 | 이지은 | 스튜디오오드리 하루는 망했어도 여전히 멋진 당신에게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낸 그 밤, 누군가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면 꼭 이 책에 쓰인 문장들과 같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문장 안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었다. 「Happy birthday to me」 너는 네가 참 안됐대. 세상의 여분이라서. 무언가 네 몫이다가도 곧잘 잃어버려서. 유일하나 반짝이지 못해서. 운이라고는 신호등 타이밍뿐이어서. 때로는 변명할 기회 없는 미움을 받고 흔한 사랑은 오아시스처럼 멀어서. 나는 알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히 바쁘던 너의 날들을. 네가 욕심이라 이름 붙인 크고 작은, 사실은, 꿈들을. 잊은 척 절대 잊지 않은 것들을. 예컨대 사랑 같은. 네가 알기를 바라. 모든 반짝임은 가뭇없이 사라져가며 네 유일함은 그 공백 속에서라도..
두부 | 박완서 | 창비 박완서 산문집 스물세 편의 글을 모두 읽고서 책 정보를 살펴보니 초판 시기는 2002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하고도 일 년 전이 되고, 여기 엮인 산문들은 그보다 훨씬 전인 1995년부터 쓰인 것을 엮었으니 삼십 년을 향해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글을 읽는 나로서는 강산도 세 번 바뀔 그 물리적 시간의 흐름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문장 안에서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는 박완서 작가를 마주했다. 그것은 곧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 그 끝에는 — 단박에 우리의 눈을 홀리는 빛나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 저 밑의 하찮고 소박해서 쉬이 업신여겨지거나 지나칠 법한 것에 진득하게 머무르며 그 작은 것들에 목소리를 보태는 따스함이지 않았을까. 더욱이 삶의 희로애락, 그 모든 순간을 통과..
슬픔을 아는 사람 | 유진목 | 난다 유진목의 작은 여행 “여행자가 되어 분노를 잠재워볼 심산이었다”(p.207)는 저자는 “하필 하노이였던 것은 그곳의 모든 음식이 맛있기 때문이”(p.207)라고도 덧붙였다. 그 세 번의 여행을 통한 에세이 『슬픔을 아는 사람』은 저자가 혼자서 낯선 곳으로 떠나 심신을 달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조용하고도 격렬한 사투를 벌이고 있던 나날의 기록이다. 그런 까닭에 설렘과 즐거움 일색인 기존의 여행 에세이와는 아주 다른 결의 글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러나 여행이란 모름지기 지친 일상을 잠시 세워 두고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함을 떠올려 봤을 때, 어쩌면 이 편이 보다 현실적인 여행의 감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슬픔의 미덕을 아는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림자아이가 울고 있다 | 유범희 | 생각속의집 불안한 당신에게 보내는 따뜻한 심리그림책 마음속 불안은 일상의 평온을 깬다. 그렇기에 마땅히 경계해야겠지만, 살면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결코 없다. 그런 까닭에 자기 안에 깃든 불안을 잘 다스리는 것은 평온한 삶과 직결된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이는 단연코 없으리라. 그럼에도 말처럼 생각처럼 쉬이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인 저자는 불안을 그림자아이로 표현하며, 자신 안에서 울고 있는 그림자아이를 회피하지 말고 마주하라 조언한다. 몸을 적당히 움직임으로써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이룰 것을, 자기 안의 불안을 잠재울 더 큰 힘이 있다는 용기를 가질 것을, 나아가 적당한 불안은 외려 우리의 생존을 돕는 이로운 감정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 무엇보다 삶의 불확실..
식물적 낙관 | 김금희 | 문학동네 문득 일상을 돌보고 싶어지는 가뿐한 전환의 감각 인간사에 초연한 채 계절의 순환하는 존재들이 선사하는 아름답고 느긋한 낙관의 에너지 식물을 돌보면서 마주한 생각들의 기록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일상을 살아가는 위로와 공감을 자아내며 식물적 낙관의 세계로 인도한다. 더러는 이런저런 연유로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들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체념하면서도 물을 주며 마음 쓴 일이 결국 봄에 이르러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 과정 안에서 무엇인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일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또 저자는 “식물을 기를수록 알게 되는 것은, 성장이란 생명을 지닌 존재들이 각자 떠나는 제멋대로의 (때론 달갑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