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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세속적인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페이지2북스 400년 동안 사랑받은 인생의 고전 17세기 스페인 예수회 소속 수도자이자 철학자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잠언집이다. 여기에는 『아주 세속적인 지혜』라는 제목에 더없이 부합하는 현실적인 조언들로 빼곡한데, 그 안에서 현재 마주하고 있는 고민이나 어려움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풀리게 한다. 더욱이 이 잠언들은 40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유효하게 다가옴으로써 시대를 넘어 인간과 삶을 향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깊은 통찰을 만나게도 한다. 「003 신비주의는 신의 방식이다」 - (…) 당신의 입장을 너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마라. 평범한 대화에서도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신중한 침묵은 지혜의 성소다. 해결책을 너무 구체적으로 밝히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 이는 비판의 여지를..
눈부신 안부 | 백수린 | 문학동네 슬픔의 터널을 지나 쏟아지는 환한 빛처럼 긴 시차를 두고 도착한 애틋한 화해의 인사 언니를 사고로 잃고 아빠와 헤어져 엄마, 동생과 함께 독일로 떠났던 해미를 생각한다. 시한부인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고자 한수, 레나와 머리를 맞대어 골몰했던 나날, 이후 독일을 떠나고도 한수의 실낱 같은 희망을 위하여 거짓 편지를 써야 했던 해미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언니의 죽음 앞에서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소녀는 이번에 만이라도 어찌할 수 없는 죽음 앞에 놓인 선자 이모와 그녀의 아들 한수를 위하여 그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던 것이리라. 그로 인한 죄책감을 떠안을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해미의 간절한 마음에 나는 얼마나 가닿았을까. 마주한 상실의 아픔은 때때로 한 인간의 삶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림자아이가 울고 있다 | 유범희 | 생각속의집 불안한 당신에게 보내는 따뜻한 심리그림책 마음속 불안은 일상의 평온을 깬다. 그렇기에 마땅히 경계해야겠지만, 살면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결코 없다. 그런 까닭에 자기 안에 깃든 불안을 잘 다스리는 것은 평온한 삶과 직결된다. 물론 이 사실을 모르는 이는 단연코 없으리라. 그럼에도 말처럼 생각처럼 쉬이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일 뿐.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인 저자는 불안을 그림자아이로 표현하며, 자신 안에서 울고 있는 그림자아이를 회피하지 말고 마주하라 조언한다. 몸을 적당히 움직임으로써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이룰 것을, 자기 안의 불안을 잠재울 더 큰 힘이 있다는 용기를 가질 것을, 나아가 적당한 불안은 외려 우리의 생존을 돕는 이로운 감정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 무엇보다 삶의 불확실..
식물적 낙관 | 김금희 | 문학동네 문득 일상을 돌보고 싶어지는 가뿐한 전환의 감각 인간사에 초연한 채 계절의 순환하는 존재들이 선사하는 아름답고 느긋한 낙관의 에너지 식물을 돌보면서 마주한 생각들의 기록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일상을 살아가는 위로와 공감을 자아내며 식물적 낙관의 세계로 인도한다. 더러는 이런저런 연유로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들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체념하면서도 물을 주며 마음 쓴 일이 결국 봄에 이르러 꽃망울을 터뜨리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 과정 안에서 무엇인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일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또 저자는 “식물을 기를수록 알게 되는 것은, 성장이란 생명을 지닌 존재들이 각자 떠나는 제멋대로의 (때론 달갑지 ..
맡겨진 소녀 | 클레어 키건 | 다산책방 애정 없는 가족으로부터 먼 친척 부부에게 떠맡겨진 소녀가 인생 처음으로 마주하는 짧고 찬란한 여름 부모 사랑을 모르고 자란 소녀가 — 아이가 없는 — 먼 친척 집에서 머물며 마주한 세계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아주머니의 손은 엄마 손 같은데 거기엔 또 다른 것, 내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있”(p.24, 25)었고, 아저씨가 손을 잡았을 때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p.69, 70)면서도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p.70)이고 있는 것을 알아챈다. 그렇게 소녀는 맡겨진 집에서 낯선 감정을 느끼며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침묵 | 엔도 슈사쿠 | 바오로딸 그리스도교 박해의 시련 속에 배교를 강요당한 고뇌의 여정 이교도의 나라 일본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뿌리내리게 하고자 선교 활동에 나선 성직자들이 있었다. 1637년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 세바스티안 로드리고가 그중 한 사람으로 동료 신부인 프란치스코 가르페와 함께 마카오를 거쳐 일본으로 향했는데, 거기에는 앞서 떠난 스승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소식에 대한 진위를 살피기 위함도 있었다. 그렇게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로드리고 신부가 마주해야만 했던 — 그리스도교 박해의 시련 속에 배교를 강요당한 — 고뇌의 여정을 따른다. 그 여정을 밟으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자연스레 하느님의 침묵에 대하여 묵상해 본다. “하느님께선 무엇 때문에 이런 괴로움을 내려주십니까?”(p.94) 읍소했던 기치지로의..
에드워드 호퍼 | 롤프 귄터 레너 | 마로니에북스 에드워드 호퍼(1882-1967) 삶과 작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창 가 전시 중이다. 2층과 3층의 전시실을 거쳐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전면에 걸린 「햇빛 속의 여인(A Woman in the Sun,1961)」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유일한 유화 작품인데, 한 여인이 침대 옆에 나신의 상태로 서 있고 왼쪽 창 밖으로 초록의 두 언덕이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 커튼 자락이 보이는 — 정면 창을 통해 햇빛이 쏟아진다. 그로 인해 불을 밝히지 않은 방 안의 그녀는 마치 무대 위에 유일하게 조명을 받고 있는 연기자처럼 관람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번 전시의 오디오 가이드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강렬하고 밝은 ..
각각의 계절 | 권여선 | 문학동네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왜 기억하는가 우리가 왜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에 대한 권여선의 깊고 집요한 물음 우리가 말하는 기억은 무엇이고 무얼 위한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어쩌면 스스로를 살아가게 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써 우리 각자는 기억이란 것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는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하여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한 방향으로 우리의 기억은 나아가고, 때로는 굴절되고 왜곡되기도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함께 한 어느 순간의 일들이 저마다의 기억 속에서 달리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고 말이다. 동시에 우리는 기억을 반추하며 퍼즐을 맞춰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인연을 이어가는 한편 인연의 끈을 놓기 위하여 기억의 파편을 저 멀리 흘러 보내기도 하는 존재들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