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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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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 바다출판사 세상과 사람을 잇기 위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짐과 노력 입때껏 내가 만나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은 늘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 사회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음 직한 일들을 보여줘 왔다. 그 안에서 나는 개인의 사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세간의 선입견 혹은 소외와 무관심, 방관이 어쩌면 한 사람이 짊어진 짐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부족하고 미숙한 면모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 지점이 고레에다 감독의 세계관이 가지는 독자성이라고 생각한다. 보여주지만 쉬이 판단하지 않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성숙한 자신, 더 나은 사회를 희망하게 만드는 일……. 이를테면 평온한 일상의 가운데 던져진 돌..
먼 아침의 책들 | 스가 아쓰코 | 한뼘책방 인생이 그토록 많은 그늘과 그만큼의 풍요로운 빛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먼 아침, 스가 아쓰코를 사로잡았던 책들 어린날의 기억이, 그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던 책과 함께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되살아난다. 책 속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순수했던 나날은 뚜렷한 신념과 균질한 사고에 한껏 매료됐던 시기를 지나, 가닿고자 했던 전 지구적 세계관에 대한 열망을 향해 나아간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곧잘 ‘책에 읽히고 있’(p.31)던 시기에 대한 아주 오래된 기억들 속의 것이다. 그럼에도 퍼즐 조각을 차근히 맞춰 나가듯 하나씩 끼워 나가는 일이 더없이 매끄러운 것은 ‘책’이라는 강렬하고도 명백한 매개물이 존재하는 까닭이지 않았을까.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일화, 자연과 가까이했던..
猫を棄てる(고양이를 버리다) | 村上春樹 | 文藝春秋 세월에 잊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세월에 자꾸만 떠오르는 것이 있다 어릴 적,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고양이를 버리러 고로엔 해변에 나갔던 일화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아버지가 걸었던 삶에 대하여 되짚어본다. 1917년 교토의 한 절집에서 태어나 교사 생활을 했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 그는 스무 살의 나이에 학업 도중 첫 징병되었고, 이후 돌아와 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병역에 임했다고 한다. 그때의 참혹했던 기억들은 평생에 걸쳐 그의 마음 안에서 무거운 짐으로 자리하게 되었고, 그것은 매일 아침이면 적지 않은 시간을 불단 앞에서 두 손 모으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어린 하루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더욱이 아버지에게서 어렴풋하게 전해 들은 전쟁의 단편적 기억, 그 안에서도 일본군에 의해 잔인한 학살이 자행..
베네치아의 종소리 | 스가 아쓰코 | 문학동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 스가 아쓰코 밀라노, 안개의 풍경 | 스가 아쓰코 기억 속 밀라노에는 지금도 안개가 고요히 흐르고 있다 안개 자욱한 밀라노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자니, 자연스레 한 여인이 배경 안으로 들어온다. 그 byeolx2.tistory.com 밀라노, 안개의 풍경 | 스가 아쓰코 기억 속 밀라노에는 지금도 안개가 고요히 흐르고 있다 안개 자욱한 밀라노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자니, 자연스레 한 여인이 배경 안으로 들어온다. 그녀는 말간 눈동자를 반짝이며 조근 byeolx2.tistory.com 환상의 시간은 언젠가 어쩔 수 없이 현실로 회귀한다 끝없는 사유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춘의 초상 『밀라노, 안개의 풍경』,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에 이어 집어 든 『베네치아의 종..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무라카미 하루키 | 비채 낯가림 심한 작가가 털어놓은 아기자기하고 비밀스런 일상 예쁘고 못나고 길고 짧고를 넘는 무라카미 하루키식 해피 라이프! 치밀한 구성과 전개, 특유의 분위기로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하게 구축하고 있어 흔히 ‘하루키 월드’라 표현되곤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단연 독보적이다. 그런데 소설 못지않게 매력적인 것이 바로 그의 에세이가 아닌가 싶다. 거기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비슷한 듯 다른, 익숙한 듯 낯섦에서 발견하는 의외성, 그 색다름이 호기심을 자극해 두 장르 간 동반 상승효과를 자아내는 것도 같다. 그것은 마치 소설을 쓰는 하루키는 매끈하게 면도한 후 곧게 잘 다려진 양복을 차려입은 채로 바르게 서 있는 말쑥한 모습이라면, 에세이에서 만나는 그는 한층 편안한 일상복 차림으로 역시나 내키는 대로..
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 무레 요코 | 양파 무레 요코의 삶과 함께 해온 동물 이야기! 우연하게 인연이 닿아 끼니를 챙겨주기 시작한 길고양이 시마짱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시마짱을 두고, ‘몸은 땅딸막하고 짙은 갈색과 검은색의 줄무늬에, 얼굴이 호빵만한 데 비해서 눈은 단춧구멍만하다. 물론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랑이에는 방울이 달려 있다. 모습을 드러낼 때도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안녕들 하쇼?’라는 분위기를 풍긴다.’(p.9)고 묘사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자면, 역시나 무심한 아저씨 고양이가 그려진다. 길고양이가 밥을 얻어먹으려면 애교로 무장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토록 시크한 고양이라니. 더욱이 먹는 양도 저자와 함께 생활 중인 집고양이의 몇 배나 된다고 하니, 염치마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자..
계절에 따라 산다 | 모리시타 노리코 | 티라미수 더북 쓸데없이 바쁜 일상,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온몸으로 사계절을 맛보다 다도를 해 온지 어느덧 사십여 년, 그녀는 비로소 말한다. 다도를 배우는 동안만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일상의 시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더불어 계절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확실히 우리 삶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아주 잠시더라도 일상에 매여있는 온갖 것들로부터 놓여나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할애할 수 있는 고요하고도 차분한 시간, 이를테면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것과도 같은 시간 말이다. 그녀에게는 다도를 하는 동안이 그랬다. 마음을 가다듬고 바른 자세로 다도에 집중함으로써 찾아온 평온의 감각 안에서 때때로 흔들리기도 했던 자신을 붙잡을 수 있었기에. 그렇게 다도의 힘으로 그간의 삶을 무사히 살아낼 수 ..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 마스다 미리 | 이봄 적당히 즐겁고 나름대로 괜찮은 어른의 나날들 마치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의 글들이다. 일상 속 에피소드는 물론 그때그때의 감정들에 충실하면서도 과장 없이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있는 솔직함이 돋보이는 까닭이다. 더욱이 여기에 묶인 글들은 그녀가 삼십 대 후반에서 마흔을 맞이하는 시기에 적은 것들이어서 이 무렵을 통과하고 있는 여성들이 읽는 다면 한층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하리라. 그녀의 만화와 에세이를 좋아해서 여태껏 꽤 많은 책들을 읽어 왔는데, 그 안에서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그녀를 알게 해 준 첫 책인 데다가 가볍지만 긴 여운을 남긴 만화이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아끼고 있다. 여기에 『주말에 숲으로』 역시 빠뜨릴 수 없는 책 중의 하나인데, 이 무렵의 나 역시 자연이 주는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