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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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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에밀 시오랑 | 챕터하우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가? "나는 폭발하고 침몰하고 분해되고 싶다. 그래서 나의 파괴가 나의 작품, 나의 창작물, 나의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 슬픔, 절망, 고독, 분노, 증오, 허무, 죽음…. 에밀 시오랑(Emil M. Cioran)에게 생(生)의 비극은 외면이나 기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담담하게 맞닥뜨려야만 하는 결연한 의지의 대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태여 이겨내야 할 대상 역시 아니다. 직시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절망에 빠진 우리를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다. 산산이 부서짐을 자처하며 완성한 시오랑의 절망의 팡세가 유의미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갖 생의 비극 안에서 나약해지기 마련인 우리에게 절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이다. "언어를..
빈 배처럼 텅 비어 | 최승자 | 문학과지성사 병들고 아픈 시대에 대한 혹독한 예감 ‘살아 있음’에 대한 이토록 치열한 존재 증명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은 내 청춘의 시기를 함께 해준 그야말로 인생 시집이라고 여길 정도로 특별한 시집이다. 지금도 가끔씩 펼쳐보고 있을 정도로 애지중지하고 있는데, 서점 한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그날이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책꽂이에서 꺼내어 무작위로 펼쳐진 페이지에서 처음 읽었던 시는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이었다. 오랜 궁리 끝에 일체의 불필요한 단어들은 제하고 오직 정제된 단어들로만 이루어진, 요샛말로 대단한 걸 크러쉬를 불러일으키는 시였다. '아 썅!'을 마음속으로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묵은 체증이 확 뚫리는 듯한 소화제 같은 시였달까. 충격과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라플라스의 마녀 | 히가시노 게이고 | 현대문학 의문의 죽음들은 '단순 사고'인가 '살인 사건'인가 8년 전의 그날로부터 시작된 두 세계의 대결 이제 모든 일은 예측할 수 있다 황화수소로 인한 중독 사고가 두 달 남짓한 사이에 두 건이 발생한다. 나카오카 형사와 아오에 교수는 피해자의 신상과 사고 당시의 기후, 현장에서 발견된 단서 등을 바탕으로 사고 발생의 단서를 찾고자 애를 쓴다. 애초에는 황화수소를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에 주목해 우연히 발생한 아주 불운한 사고로 판단한다. 그러나 사고 현장을 파헤칠수록 우연히 발생한 단순 사고로 결론짓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님을 절감하면서, 황화수소로 인한 중독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고가 어쩌면 긴밀하게 연관된 살인 사건은 아닌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러던..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 | 곤살로 모우레 · 알리시아 바렐라 | 북극곰 · 사랑과 기적을 믿는 당신을 위한 그림책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를 펼치면 일러스트레이터 알리시아 바젤라의 열 두장의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연속된 그림들은 모두 공원이라는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그림은 아니다. 동일한 장소라 할지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공원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유다. 마치 빛을 열망하던 인상주의 화가들이 동일한 풍경을 대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화폭에 담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문득 이 공원이라는 장소가, 이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 공원을 헤엄치는 붉은 물고기를 만나고 싶어졌다. 숨은 그림을 찾듯 특정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서 자연스레 인물의 표정..
애프터 유 | 조조 모예스 | arte 미 비포 유 | 조조 모예스 애프터 유 | 조조 모예스 . ▒ 2016/06/19 - [별별책] - 애프터 유(After You) -조조 모예스 (미 비포 유 뒷이야기) 미 비포 유 -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살림 영국에서 입소문만으로." data-og-host="b. byeolx2.tistory.com 윌이 떠난 뒤, 루이자 앞에 또 다른 운명이 나타나다! 윌이 떠나고, 루이자가 후일 그가 남긴 편지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됐던 『미 비포 유』가 『애프터 유』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돌아왔다. 루이자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러나 윌에 대한 자책과 원망, 슬픔에서 벗아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던 중, 윌 조차도 모르고 떠났던 그의 딸 릴리를 만나..
미 비포 유 | 조조 모예스 | 살림 애프터 유 | 조조 모예스. ▒ 2016/06/19 - [별별책] - 애프터 유(After You) -조조 모예스 (미 비포 유 뒷이야기) 미 비포 유 -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살림 영국에서 입소문만으로." data-og-host="byeolx2.tistory.com" data..byeolx2.tistory.com   꿈 같은 삶을 산 남자, 꿈을 선물받은 여자   모든 것이 완벽한 남자, 윌 트레이너. 그러나 한순간의 사고로 인해 사지마비 환자 신세가 돼 버린다. 그 덕분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상황이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그는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임시 간병인 루이자 클라크를 만나게 된다. 일하던 카페가 문을 닫으면서 오직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간병인이..
아이처럼 행복하라 | 알렉스 김 | 공간의기쁨 나는 아이들이 사는 곳에 초라한 학교를 하나 지어주었지만, 아이들은 나의 가슴속에 멋진 '행복학교'를 지어주었습니다. #. 01 아이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눈동자가, 구김살 없는 천진난만한 웃음이 진심으로 부럽다고 때때로 생각한다. 이미 어른이 돼버렸지만, 아이처럼 행복해질 순 없는 거냐고. #. 02 티 없이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환한 미소를 짓는 아이들을 만났다. 어쩐지 이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때가 탔던 마음이 한결 깨끗해진 듯하다. 이 느낌, 참 좋다. #. 03 작가 알렉스 김은 아이의 눈 안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성찰한다고 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몽글몽글한 감정들이 그의 이야기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말이고 의미인지, 아주 자연스럽게 수긍하..
봄의 정원 | 시바사키 도모카 | 은행나무 마음속에 저마다의 풍경을 끌어안은 채 우리는 지금 이 거리에 살고 있다. 철거를 앞둔 오래된 연립에 사는 다로는 우연히 같은 건물 2층에 사는 니시가 몸을 내밀어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런 니시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다로는 그녀의 시선이 근처 물빛 집에 있음을 알아채고는 남의 집을 염탐하는 듯한 그녀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후 니시에게서 그 까닭을 전해 듣고, 다로 역시 고교와 대학 시절 본 적이 있는 사진집 『봄의 정원』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물빛 집에 대한 니시의 관심은 서서히 다로에게까지 옮겨간다. "『봄의 정원』은 기억과 만남의 이야기입니다. 낯익은 듯한 풍경 속에서, 그리운 사람 혹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을 생각하거나 먼 과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