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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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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 김연수 | 문학동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기에 앞서, '작가의 말'을 읽었고, 다 읽고 나서 한 번 더 '작가의 말'을 읽어봤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에 회의적이라는 말, 대부분 다른 사람을 오해한다는 말,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한 때라는 말, 그러므로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 무심결에 읽어 나갔던 것들에서, 이후 상당한 무게감을 느끼고 말았다. 일상에서 내뱉었던 '네 마음을 알아, 널 이해해'라는 말의 무게가 새삼 견딜 수 없이 육중하게 느껴진 탓이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낼 당시의 나는 추호의 거짓 없는 진심을 말한 것이었다고 여태껏 생각해 왔다. 그러나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애당초 가능한 것인지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김연수 | 문학동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입양아 출신의 카밀라는 양부가 보내온 상자 안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가만히 사진 속 인물들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직감적으로 자신과 친모임을 알아채고, 그동안 묻어두었던 과거를 알아내고자 한국의 진남으로 향한다. 그러나 진실에 다가가려고 할수록 그것을 막아서는 이들의 공세에 밀려, 자신의 친모가 그랬던 것처럼 파도에, 바다에 몸을 내맡긴다. 그런데 그곳에서 지금의 자신보다 어린, 사진 속 열여덟 살 그 모습 그대로의 엄마를 만난다. 뻗은 손끝으로 엄마의 살갗을 매만지며, 그 생생한 감각 안에서 스스로가 다시 태어남을 느낀다. 그것은 진실을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그녀 자신의 운명을 자각하는 것인 동시에 앞으로 헤쳐나갈 나날에 대한..
상냥한 폭력의 시대 | 정이현 | 문학과지성사 미소 없이 상냥하고 서늘하게 예의 바른 위선의 세계, 무서운 것도, 어색한 것도, 간절한 것도 '없어 보이는' 삶에 질기게 엮인 이 멋없는 생활들에 대하여 표지 한 편으로 가지런히 열 맞춰 놓인 활자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눈으로 읽으며,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다. 상냥한데 폭력적이라니…?? 하지만 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알게 모르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상냥함을 가장한 폭력의 아이러니를 겪어오지 않았던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리가 바로 그런 시대의 한가운데임을 머리보다는 가슴 깊숙이에서부터 이미 수긍하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이리라.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니, 책을 펼치는 것에 덜컥 겁이 났다. 어쩐지 그간 애써 외면해왔던 혹은 가까스로 담담하게 맞닥뜨려왔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 앨리스 먼로 | 뿔(웅진) 감미롭고도 강렬한 문장으로 그려낸 이 시대 모든 사랑의 풍경 평범한 사람들의 만남과 이별, 기쁨과 절망을 노래하는 다섯 빛깔 이야기 삶을 향한 깊이있는 이해가 돋보인다. 일상 안에서 한번쯤 겪기 마련인 어떤 생각, 어떤 감정의 찰나를 하나의 예시처럼 적절한 상황 속의 등장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는 식으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 화자들은 하나같이 우리 주변 어디에서 마주하더라도 낯설지 않은 이들이고, 그들의 삶 역시 일상의 범주 안에서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더 깊이 들어가보면, 때론 뜻밖의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당황하기도 하며, 시시때때로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두고 안도와 후회를 거듭하기도 하는…, 나름의 복잡다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자존감 수업 | 윤홍균 | 심플라이프 어떻게 나를 지키고 사랑할 것인가 정신과 의사 '윤답장' 선생의 자존감 셀프 코칭법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내가 행복해진 과정은 곧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고 고백한다. 말하자면, 자존감의 저하는 곧 불행이고, 자존감의 향상은 행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존감 수업』은 저자 개인이 과거에 겪었던 불행의 경험과 역시 불행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수많은 이들을 상대하며 이르게 된 이같은 사실에 주목하며, '자존감' 이라는 것에 대해 말한다. 흔히들 '자존감'이라고 하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존중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책에서 밝히고 있는 기본 정의인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self-esteem)'와 비교해도 큰 무리는 없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을 위한 자존..
안나 카레니나(전3권) | 레프 톨스토이 | 문학동네 농노제 붕괴에서 러시아혁명에 이르는 한 시대의 초상을 그려낸 인류 보편의 걸작! 여태껏 지내오면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생각해 왔던 어떤 것 ―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한 것, 명료한 듯하면서도 모호한 것, 이해될 듯하면서도 불가해한 것… 이어서 삶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엉클어진 것들 ― 에 다소나마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한 듯한 느낌, 이것이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난 이후의 소감이자, 나름의 수확이다. 1800년대 후반 러시아 상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안나 카레니나』는 익히 잘 알려진 대로 불륜을 소재로 한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다. 즉 안나와 그녀의 남편인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 그리고 간통 상대인 알렉세이 키릴로비치 브론스키, 이 세 사람을 둘러싼 사랑에 대한 오해와 갈등, 화해의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 열린책들 도리언 그레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나의 모습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숭배와 그로 인해 자초하고 마는 비극적 말로에 대한 이야기다. 그 중심에 서있는 세 인물 -― 고대 그리스 조각상과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젊은이 도리언 그레이와 그에게서 예술적 영감을 받고 초상화를 그린 바질 홀워드, 그리고 순수한 영혼이었던 도리언에게 젊음과 쾌락에 눈을 뜨게 하는 헨리 워튼 경 -― 을 지켜보자면, 자연스레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면모들을 떠올리게 한다.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에 취해 그것을 영원히 지켜내고자 변질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매 순간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
묘한 이야기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봄고양이 날카롭고 예리하지만 늘 따뜻했던 삶을 향한 시선 『묘한 이야기』가 여러 책들 사이에서 반짝였던 것은 '이제 아쿠타가와 수상작이 아닌, 진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읽자!'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던 띠지 문구의 공이 컸다. 사실 띠지라는 것이 버리기엔 아깝고, 그대로 두자니 거추장스러운 계륵 같은 존재라고 느낄 적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같이 독자의 마음을 간파하기라도 하는 듯한 명쾌한 문구가 적힌 띠지라면, 오히려 반갑고 고마울 따름! 실제로 서점에서 일본 소설 코너를 기웃거리다 보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고 선전하는 책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얼마 전 읽었던 시바사키 도모카의 「봄의 정원」이 그랬고, 요시다 슈이치의 「파크 라이프」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코미디언 출신의 마타요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