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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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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추억 | 한가람 | 북로그컴퍼니 한겨울에 만끽하는 청량하고 눈부신 한여름의 로맨스 지난 2017년의 마지막 날 밤, 한 해를 보내고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기로에서 혼자, 조금은 헛헛한 마음으로 방 안에 켜놓은 향초 불꽃을 멍하니 바라봤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DJ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가 딴생각에 잠시 골몰하다가를 반복하다가 얼마 지나지 못해 이번에는 책을 읽어볼까, 소설책을 쥐고 한참을 있기도 했었는데, 이상하게도 도무지 집중할 수 없는 날이었다. 그러다 TV를 켰고, 건성으로 보기 시작한 드라마 여주인공이 갑작스레, 것도 아주 느닷없이 죽으면서 바짝 신경을 집중하고 2부를 보기 시작했었다. 그때 본 게 ‘한여름의 추억’이라는 2부작 단막극이었다. 나는 그날 한여름(여자 주인공)을 만나, 그녀에게서 얼마간의 내 모습을 투영했던..
그 겨울의 일주일 | 메이브 빈치 | 문학동네 “온갖 사연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치유 공간 호텔 스톤하우스, 이곳의 다음 손님은 바로 당신입니다!” 아일랜드의 서부 해안, 스토니브리지의 낡은 저택 주인 미스 퀴니는 고향에 돌아온 치키에게 자신의 집을 호텔로 개조해 운영해 보길 제안한다. 치키는 고민 끝에 뉴욕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스타부인으로서 호텔을 이끌어 나가기로 결심한다. 한편 리거는 더블린에서의 방탕한 생활 끝에 도망치듯 발 디딘 엄마의 고향 스토니브리지에서 치키의 도움을 받아 호텔 지배인으로서, 카밀을 만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 런던에서의 고된 생활 중에 잠시 돌아와 치키 이모를 돕는 올라 역시 호텔 스톤하우스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세계 각지로부터 손님들이 속속 찾아온다. 그렇게 호텔 스톤하우스에 모..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 민음사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어딘지 모르게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들춰보지 않아도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82년생 김지영의 암담한 모습을 구태여 활자로까지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리라. 분명 겁내 하며 회피하고 있었고. 그래서 얼마간은 비겁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또 다른 글, 「현남 오빠에게」를 우연히 읽고, 소설 속 그녀가 만남 이래 줄곧 속박 당해 왔던 강현남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걸어가겠다고 선언하는 다부진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이 책을 읽어볼 마음이 생겼으니까. 과거에 비해 남성과 여성을 차별 짓는 것들이 확연히 줄어든 시대임에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들의 삶을 옥죄고 제약..
맛 읽어주는 여자 | 모리시타 노리코 | 어바웃어북 음식에 담긴 삶의 서사와 시대의 풍경을 음미하다 저자는 오랜 미식 경험을 바탕으로 능숙하게 음식 이야기를 전한다. 유년 시절 맛보았던 음식에 얽힌 추억을 바탕으로, 그 음식이 어떤 시대적 배경 안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 그러니까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각기 음식들이 걸어온 시간들을 한 개인의 추억과 더불어 되짚어 보는 식이다. 가령 외부로부터 들여온 식재료를 자신들만의 조리법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시킨 돈가스나 카레라이스, 고로케 등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한편으로는 학창 시절의 씁쓸한 기억 때문에 기피하게 된 찹쌀 주먹밥과 팜피 오렌지에 얽힌 이야기,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맛을 알게 된 가지 요리와 '오하기'라는 이름의 팥떡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을 사기에 ..
현남 오빠에게 | 조남주 외 | 다산책방 스스로를 믿기로 선택한 여성의 삶을 정가운데 놓은 일곱 편의 이야기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테두리 아래 엮인 일곱 편을 만나보았다. 그중 몇몇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어찌나 숨 막힐 듯 답답하던지, 얼마쯤은 화도 났다. 소설 속 그녀들은 인생의 한 때를 자신을 지운 채 살아왔고, 어떤 이는 그런 삶에 길들여진 나머지 안타깝게도 더 이상의 개선 의지조차 없어 보이기도 했다. 아니,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말이 더 알맞아 보였다. 나는 그 지점에서 분노에 비례하는 슬픔을 느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아내이고 며느리이고 엄마라는 굴레에 갇힌 그녀에게 정녕 자유 의지란 없는 걸까.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과감히 목소리를 낼 순 없었던 걸까, 책망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냥 한 사람만을 탓하기에는 ..
今日も怒ってしまいました(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 益田ミリ | 文春文庫 화를 내는 일은 날마다 가볍게 찾아오는 것 저자는 화를 내고 말았던 자신의 에피소드를 풀어놓으며, 당시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 일화들을 차례로 만나다 보면, 그 대상은 잘 알지 못하는 타인일 때도 있지만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가까운 이에게서 비롯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더러는 그 화가 자신을 향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로 인한 화는 잠시 스쳐 지나고 마는 별 것 아닐 때도 있지만, 며칠을 끙끙 앓을 정도로 치밀어 오르는 화일 적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일상에서 ‘화’라는 것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감정인지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머리말에 보면, 작가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 화에 슬픔이 포함되어 있는지? 혹 그렇지 않다면, 그 화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고. 그러니 구원받..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 수오서재 삶을 사랑한 화가, 모지스 할머니의 자전 에세이! 76세에 시작해 101세까지 그림을 그려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의 인생을 담은 자전 에세이다. 형제 많은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열두 살 나이에 가정부 일을 하게 된 어린 시절부터 결혼 후 남부로 터전을 옮겨 농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버터와 감자 칩을 만들어 생계를 꾸리던 날들, 이후 고향인 북부 이글 브리지로 돌아와 황혼의 나이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해 세계적인 화가로 거듭난 삶에 대하여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걸어온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좋았던 날들 만큼이나 힘든 나날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껴안고 묵묵히 걸어 나갔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비로소 많은 사람들 앞에 당당히 말한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
숲강아지 | 낭소 | arte 낭소의 몽글몽글 그림 에세이 ‘몽글몽글 그림 에세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숲강아지』를 처음 마주했을 때, 파스텔 톤의 포근한 그림들이 마음 한 켠의 시린 곳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림 사이사이 짤막한 문장들은 반려견과 함께 지내는 보통의 나날들 안에서 소소하게 느껴왔던, 그리고 멀리 떠나보낸 이후로는 일상의 빈자리를 절감하며 수시로 느껴오고 있는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마치 우리 얘기 같아,라고 공감하게 만드는 식이다. 그 안에서 때론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지만, 결국 휑했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든다. 『숲강아지』는 내게 감동스러운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였다. 그림 속의 강아지는 주인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그것에 보답이라도 하려 듯 늘 주인 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