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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 이디스 워턴 | 열린책들 19세기 뉴욕의 세밀한 풍경화이자 작가의 자화상 19세기 뉴욕의 상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세 남녀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꽤 흥미로우면서도 여운을 남긴다. 특히나 작가의 세밀한 관찰력을 통한 사실적인 묘사가 인상적.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뉴욕 상류 사회에 온전히 녹아들 수 없었던 엘렌 올렌스카는 언제나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 어느 순간, 엘렌 올렌스카에 감정이입을 하며 글을 읽어 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째서였을까. "나는 자유를 얻고 싶어요. 과거를 모두 지워 버리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엘렌의 간절한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아니면 위선적 관습으로 가득 찬 숨 막히는 뉴욕 상류 사회의 희생양을 구해내고 싶은 열망이 내 마음 어딘가에서 꿈틀대고 있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루이스 캐럴 | 열린책들 상상력과 호기심의 한계를 허물어 버린 루이스 캐럴의 대표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의 시작은 강둑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앨리스 옆으로 눈이 빨간 흰 토끼가 달려갔고, 이를 본 호기심 많은 앨리스가 토끼를 쫓아 토끼 굴 속으로 들어가면서부터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이상한, 이상한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몸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 신기한 체험은 물론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 만남으로써 환상적인 모험은 한층 극대화된다. 그 다채로운 이야기 안에서 앨리스와 더불어 한바탕 신비로운 꿈이라도 꾼 느낌이다. 과연 루이스 캐럴의 놀랍고도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부디 오늘 밤 이상한 나라든 거울 나라든, 신비로운 모험을 떠날 수 있기를. 그리하여 꿈에서 깼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 게이고 | 현대문학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기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슴 훈훈한 이야기! 경찰을 피해 숨어 다니는 도둑 삼인방 쇼타·아스야·고헤이. 어느 날 숨어있기에 알맞은 장소를 알고 있다는 쇼타를 따라 한 폐가에 들어서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이 책이 전하는 기적과 감동의 무대인 '나미야 잡화점'이다. '나미야'라는 잡화점 이름 탓에 '나야미(悩み, 고민)'도 상담해주냐는 아이들의 말장난을 계기로, 사람들은 하나 둘 이곳에 자신의 고민을 담은 편지를 보내온다. 그러면 잡화점 주인은 그 고민을 들어주고 나름의 해결책도 궁리해서 손수 답장을 적어줬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사십 년이 지난 그래서 더 이상 주인도 없이 텅 빈 오늘, 바로 이곳에 느닷없이 고민을 상담하는 편지가 날아들고, 놀란 도둑 삼인방은 반신반의하면서 ..
今日、恋をはじめます(오늘, 사랑을 시작합니다) | 高瀨 ゆのか | 小學館文庫 오늘, 사랑을 시작합니다 간사이 공항 마루젠(丸善)에서 구입한 책이다. 원작은 미나미 카난(水波風南)이라는 작가의 만화인데, 영화화하면서 동시에 문고판으로도 나온 모양이다. 내용은 원작이 순정만화인 만큼, 평범한 여주인공이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같은 반 인기 있는 남학생과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의 감정을 싹 틔우는 몹시도 뻔한 스토리다. 그럼에도 첫사랑의 풋풋함을 느끼게 하기에 가슴 설레게 하기도. だけど。 初めてのキス。 初めての恋。 初めての彼。 初めての人。 それが椿君で、本当によかった。 あの日はじめたあたしたちの恋は、これからも、きっとずっと続いていく。 唇を重ねるあたしたちの間で、椿のペンダントがそっと輝いていた。 ― p。216 그렇지만 첫 키스, 첫 사랑, 첫 그, 첫 사람, 그게 츠바키 군이라 정말로 좋았어. 그날 ..
くじけないで(약해지지 마) | 柴田トヨ | 飛鳥新社 99세 작가가 전하는 바르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 99살(2010年 당시)의 시인 시바타 도요의 처녀시집이다. 준쿠도에서 제목만 보고 그저 충동적으로 구입한 거였는데, 뜻밖에 좋은 책을 만난 기분이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시들이기에 두고두고 반복해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에 드는 시집이었다. 마치 할머니가 손녀한테 들려주는 듯한 따뜻함이 있었달까. 한편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지는 걸 느낀다. 秘密 私ね 死にたいって / 思ったことが / 何度もあったの/ でも 詩を作り始めて/ 多くの人に励まされ// 今はもう/ 泣きごとは言わない// 九十八歳でも/ 恋はするのよ/ 夢だってみるの/ 雲にだって乗りたいわ// ― p。94,95 비밀 있잖아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쓰기 시작..
템테이션 | 더글라스 케네디 | 밝은세상 한 번의 성공이 반드시 '영원한 성공'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벤이 우발적으로 게리를 살해한 후, 시신을 지하 냉장고에 넣다가 문이 닫히지 않자 발목을 절단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인생의 꿈이었던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 찾아오는 불행의 늪…, 그리고 그 결말. 거울 같은 것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날마다 자신을 엄습하는 질문, '이 세상 속에서 나는 누구일까? 나라는 존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오리무중의 질문에 시달리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런 질문을 던져도 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지금의 나처럼, 그래도 답 하나는 얻을지 모른다, 역시 지금 내가 스스로를 타이르며 말하는 것 같은 답을. 그런 불가능한 질문들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자. 모든..
세상에 예쁜 것 | 박완서 | 마음산책 작가 박완서의 성찰과 지혜, 미출간 산문들! 급격하게 쌀쌀해지기 시작한 11월을 『세상에 예쁜 것』과 함께하면서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었기에 참 고맙다. 사실 박완서 작가의 소설들을 아예 안 읽었다고도 할 수 없지만, 관심 있게 읽었다고도 할 수 없는지라 여백이 많은 상태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사실 이 책도 우연하게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이걸 인연으로 삼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세상에 예쁜 것』에 실린 글들을 시작으로 거꾸로 시간 여행을 하듯 읽어 보자는 심산이었다. 역시나 책을 덮으며 이제 더는 박완서 작가의 새로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질 만큼 지혜와 통찰이 있는 한 권이었다. 아직 읽지 못한 많은 책들이 기다려진다. 40세에 첫 소설을 쓰고 나서 다시 40년..
かもめ食堂(카모메 식당) | 群ようこ | 幻冬舍 "이곳에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아요" 앞서 영화로 본 적이 있어서 원작 소설은 어떨지, 궁금한 마음에서 읽어 보았다. 핀란드의 헬싱키라는 낯선 공간에서 음식을 매개로 하나 둘, 낯선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가는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 그대로였다. 함께하는 내내 이런 식당이 내 주변에도 있다면 정말 푸근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시에 핀란드로 여행 떠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던 것 까지도. 다른 점이 있다면, 소설 도입부에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 그러니까 핀란드로 떠나기 전 주인공 사치에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다는 정도다. '인생은 전부 수행(人生すべて修行)'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던 그녀가 복권에 당첨되면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핀란드로 떠나게 된다는, 카모메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