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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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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남자와 여자, 과거와 현재, 소리와 공간 그 깊은 간극에 흐르는 비밀스러운 선율 공교롭게도 표제작인 「여자 없는 남자들」을 포함한 일곱 편의 이야기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일상에서 부재하게 된 '여자 없는 남자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그들이 각기 상황에서 겪게 되는 모습들을 하루키만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내용 외적으로도 하루키의 글을 꾸준히 읽었던 분이라면 대번에 그의 소설임을 알아 챌 만큼 그만의 색채가 돋보인다.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 「셰에라자드」 중에서 여자 없는 남자들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 창작시대 언어의 연금술사, 시인 윤동주 언어의 연금술사,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주옥같은 시들이 가득하다. 근 두 달간 침대 머리맡에 두고 밤마다 한 두 편씩 읽었는데, 잔잔한 듯하면서도 굳센 의지와 자아성찰의 글귀들이 많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책장에 두고 오래도록 반복하여 읽을 좋을 시집.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p.13
엄마의 말뚝 | 박완서 | 세계사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1 「엄마의 말뚝」 연작을 비롯해 「유실」, 「꿈꾸는 인큐베이터」, 「그 가을의 사흘 동안」, 「꿈을 찍는 사진사」, 「창밖은 봄」, 「우리들의 부자」가 한 권에 담겨 그 양이 600 페이지에 이른다. 「엄마의 말뚝」은 엄마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하지만 놀라울 만큼 담담하게 적고 있다. 물론 박완서 작가 특유의 맛깔스러운 문장은 여전하다. 그래서일까, 끊어 읽을 타이밍을 찾지 못한 채 한자리에서 흥미롭게 읽었다. 이밖에 실려 있는 단편들은 삶을 바라보는,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날카로우면서도 세밀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지금 읽어도 결코 낡아 보이지 않는 글. 엄마의 말뚝 - 박완서 지음/세계사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 허지웅 | 아우름 개포동의 김갑수씨는 괴물이었을까요 갑수씨가 끊임없는 연애를 통해 증명하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요 이 도시 어딘가에서 오늘도 한숨 쉬며 떠나간 연인을 고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잊고 있을 김갑수씨를 상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확실히 타인의 망한 연애담이나 그로 인해 파생되는 찌질한 후일담은 그 정도가 지나치면 지나칠수록 흥미롭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하지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오르는 유사 경험이 오버랩돼 마냥 박장대소할 수 없었던 건 나 뿐만은 아니지 않을까. 뭐, 그런 잡다한 생각을 간간히 하며, 나의 사정일 수도 있지만 당신의 사정일 수도 있는, 그러나 현재로서는 김갑수씨의 사정인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김갑수씨를 통해 작가이자 글 속의 화자 허지..
말하자면 좋은 사람 | 정이현 | 마음산책 잠시 혼자였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하여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담고 있어 낯설지 않았던 점이 좋았다. 그리고 이전에도 느꼈지만, 그럴만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 예리한 시선에 감탄하기도. 그러므로 누구라도 이 얘긴 내 얘기 아냐? 싶은 순간을 더러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잠시 혼자였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하여 쓰고 싶다던 을 읽으면서, 그 순간이란 어떤 찰나를 말하는 것일지 너무 막연해서 오히려 궁금해졌었다. 그런데 한 편, 두 편 읽다 보니 알 것 같다. 분명 나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곧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바람처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에 대해 그리고 지금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타인에 대해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오늘을 살아내고..
깊이에의 강요 | 파트리크 쥐스킨트 | 열린책들 왜 나는 깊이가 없을까?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게 됐던 건, 『향수』를 통해서였다. 도입부부터 정신없이 빠져들게 했던, 그래서 이 책, 그러니까 『깊이에의 강요』 마지막에 있는 짧은 에세이, 「문학적 건망증」에서 말하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에 십분 공감하면서도, 『향수』만큼은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단편 소설 3편과 에세이 1편으로 이루어진 얇은 책이기에 가볍게 생각하고 선 채로 표제작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쩜! 대학생활 내내 내 마음을 어지럽히던 그 이야기가 여기에 활자로 적혀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쓰인 글이 마치 방금 내 손을 거쳐 마지막 문장의 잉크 자국이 마르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 꽤나 서늘한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예술가, 그러니까 창작을 ..
수박향기 | 에쿠니 가오리 | 소담출판사 불가사의한 여름이었다 사소한 일을 유독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나같이 밋밋한 스토리가 순간 서늘하게 다가오는, 그런 묘한 매력의 단편들이었다. 누군가가 직접 겪었다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귀 쫑긋 세우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흥미롭게 듣는 기분으로 읽었달까.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 중에서 지금껏 의문으로 남아있는 미스터리한 일화들을 누구나 한 두 가지씩은 품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이야기들이 여기 한 데 모여 있다. "썩은 곳에 새 생명이 움트는 거야." - p.119 「재미빵」 수박 향기 -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주)태일소담출판사
안녕 다정한 사람 | 은희경 외 | 달 그래서 그곳이 그대가 그립다 『안녕 다정한 사람』은 서로 다른 여행지를 다녀와, 그곳에서 그들 나름대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담은 여행 에세이다. 10인의 여행은 저마다의 포커스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대자연 앞에서 순수한 소녀적 감성을 되살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또 다른 이는 평소 즐겨 마시던 와인 혹은 맥주에 시선을 고정한다. 물론 서로 다른 나라와 도시를 여행한 이유도 있겠지만, 분명 같은 나라, 같은 도시를 여행한다고 하더라도 놀라우리만큼 그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냈을 것이다. 그런 점을 포착하는 것이 흥미로우면서도 친한 지인과 여행을 갔다가 의견 차로 다투고 왔다는 얘기들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이유지 않을까 싶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도 새삼 하게 한다. 그만큼 같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