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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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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 셔윈 B. 눌랜드 | 세종서적 50여 년간 무수한 죽음을 접해온 의사가 던지는 충격과 감동의 메디컬 에세이! 어릴 적 나와 내 주변 사람의 죽음은 매우 아득한 일이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심한 공포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영영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지독한 상심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므로 가능한 한 그것으로부터 더더더 멀리 도망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랬던 확고함에 조금씩 틈이 생겨났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책을 통한 무수한 죽음의 목격과 그 상황에서의 그들 사유가 차츰 시고의 변화를 가져왔었다는 것이 지금 와 생각이다. 무작정 기피할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대비하고 대응해 나가..
어린 왕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홍신문화사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 알게 된 소중한 진리 ―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므로,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 ― 를 '나'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당부한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위해 소비한 시간 즉, 길들인 것에 대해서는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는 곧,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넌 아직 나에게는 다른 수많은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불과해. 그래서 나에겐 네가 필요없어. 또 너에게도 내가 필요없겠지. 난 너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지...
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 한겨레출판 그 누구도 내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기에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그토록 많은 것을 보았구나 그토록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말이 없음이여.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이라는 데에 눈이 갔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뭐, 대단히 중요한 사항은 아니므로 일단 페이지를 넘기기로 하자. 양 페이지 가장자리로 가지런히 자리한 차례가 등장했다. 장편소설의 소제목들인지, 단편소설들인 건지, 아님 에세이를 모아놓은 건지……, 역시나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중요한 사항은 아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작품'들이 들어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 생각해봐도 기이할 정도로 책을 손에 쥐고 있는 내내 '작품집'이라는 데에 사로잡혀 있었다. 번역가의 의견인지..
기린의 날개 | 히가시노 게이고 | 재인 대도시 한복판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 가가 형사가 날개 달린 기린 조각상에 얽힌 사건의 진실에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오쿠다 히데오에게 닥터 이라부가 있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엔 가가 형사가 있다. 각각의 캐릭터는 서로 다른 작가에 의해 만들어졌고 서로 성격도 직업도 다르지만, 한 가지 닮은 구석이 있다. 너무도 유능하다는 사실! 그 영민함에 독자는 한없이 매료된다. 작가 역시 덧붙였듯, 『기린의 날개』는 가가 형사 시리즈 최고의 걸작이다. 애먼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한 채, 종결되어지는 듯했던 사건을 그는 말끔하게 해결해 낸다. 특유의 끈질긴 탐문 수사와 날카로운 추리가 빛을 발한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이 있었음이 드러난다.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또..
호텔 프린스 | 안보윤 외 | 은행나무 호텔이라는 공간을 관통하는 젊은 작가 8인의 내밀한 시선 『호텔 프린스』는 8인의 젊은 작가들이 소설가의 방에 머무르며 써 내린 단편을 엮은 소설집이라고 했다. #. 01 '호텔'이라는 비일상적 공간이 주는 산뜻한 설레임을 품은 글이길 바랐다. #. 02 호텔에 투숙한 이들을 엿보는 듯 하다. 그곳에서 누구는 무료 숙박 이벤트에 당첨돼서, 또 누구는 집 나간 아내를 찾아서, 또 다른 누구는 페스티발에 참여했다가, 또, 또 누구는 나선형 그림을 그리는 그를 찾아서……. 그들을 살피는 일이 ― 다소 기대에 어긋나는 흐름이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 대개는 흥미로웠다. #. 03 근데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너무도 우중충해! 분위기상으로는 차라리 여관이나 여인숙에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은 생각이 ..
동급생 | 프레드 울만 | 열린책들 친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던 동급생 두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과 이별 그리고 충격과 감동의 마지막 한 문장! 일순간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지막 단 한 줄의 문장이 주는 거센 충격과 감동이 한동안의 나를 지배했고,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므로 나로서도 매우 희귀한 경험이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작품이 또 어딨을까.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고, 나치즘이 무서운 속도로 뻗어가던 시기,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배경으로 한 『동급생』은 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 사이의 우정을 그린 소설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그 나이대 사춘기 소년들이 그러하듯, 두 소년은 문학과 예술, 낭만과 철학, 이따금 이성에 대해 관심을 둘 뿐이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풀어야 할 문제를 안고 있지만, ..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 김영사 글쓰기는 유혹이다 한 작가의 창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더욱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라면, 한층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책 읽기를 즐기는 누구라도 『유혹하는 글쓰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머리말과 후기를 제외하고, 크게 이력서, 연장통, 창작론으로 나뉜다. 어린시절부터 작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이야기한 이력서 부분은 그의 소설 속 입담을 고스란히 옮겨와 흥미롭다. 연장통에서는 창작에 요구되는 기본 자세와 도구에 대해 간략히 말하고, 창작론에서는 이것들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 제목의 타당성을 뒷받침한다. 스티븐 킹이 연장통에서 지적하는 글쓰기의 가장 기본되는 사항들 ― 적절한 어휘 선택, 간결한 문체와 적확한 문법, 소심..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 이미경 | 남해의봄날 즐거운 기억이 구멍가게에 숨어 있다! 여느 때처럼 인터넷서점을 기웃대다가, 이미경 작가가 그리고 쓴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신간이었는데, 그녀의 정교하고 세밀한 펜화를 보는 순간 매료됐다. 더군다나 구멍가게라니! 20여 년간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스러져가는 점방을 그려왔다고 했다. 그 시간들은 따뜻하고 정겨웠던 유년시절에 대한 추억의 힘이고, 동시에 화폭에서 나마 지켜나가고 싶은 희망의 손놀림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과 감정들이 맞닿아 자연스레 마음이 동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시간의 흔적이 있고 따스함이 있다. 기억 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구멍가게로 가는 길,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는 소박하고 정겨운 행복이 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