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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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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 윌리엄 폴 영 | 세계사 모든 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곳 맥은 가족 캠핑으로 머물렀던 야영장에서 막내딸 미시를 유괴당한다. 경찰의 수사 끝에 숲 속 낡은 오두막에서 찢어지고 피에 젖은 미시의 빨간 드레스를 발견하지만, 시체는 끝내 찾지 못한다. 그러나 현장에 놓여 있던 점 5개가 찍힌 무당벌레 핀이 미시가 연쇄 유괴범의 피해자가 됐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고, 사건은 피살 추정으로 공식 종결된다. 4장까지의 주요 내용이다. 갑작스러운 실종에 이은 살해는 여느 추리 소설과 다를 바 없는 흐름이었고, 으레 사건의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일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전개는 매우 의외였다. 사건 발생으로 부터 3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여전히 거대한 슬픔 속에서 살고 있던 맥에게 하나님의 편지가 도착한다. 맥은 하나님의 뜻에 ..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 김신회 | 놀 서툰 어른들을 위한 에세이 "틀린 길로 가도 괜찮아. 다른 걸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보노보노를 잘 모른다. 언뜻 보기엔 고양이형 로봇인 도라에몽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책 뒤편의 보노보노 주요 캐릭터 소개를 살피니 보노보노는 아기 해달이란다. 공손하게 두 손을 모은 채 삐질삐질 땀 흘리고 있는 보노보노. 그 모양새를 보자니, 꼭 소개말이 아니더라도 만화 속 성격이 대충은 그려진다. 작은 일에도 걱정, 고민 많은 소심한 성격일 거라는 것. 그래서 어쩌면 나와 통하는 구석이 제법 있을지도 모르겠단 기대감이 보태졌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우선 자기감정에 솔직해야 하는 거였다. 보노보노와 그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그게 세상 쉬운 일 같으면서도, 결코 그렇지 않은..
오직 두 사람 | 김영하 | 문학동네 우리는 모두 잃으면서 살아간다. 여기,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그 이후'의 삶이 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이가 감쪽같이 사라진다. 이제 막 세 돌이 지난 아이는 누군가에 의해 유괴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어떤 흔적도 찾지 못한 채,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이를 찾는 전단지 뭉치를 들고 헤매는 것뿐이다. 그 사이 아내의 정신은 흐려졌고, 가세는 기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만 찾을 수 있다면, 이 고통의 시간들은 말끔히 씻길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십일 년 후, 아이를 찾았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더 잔혹하고 거대한 비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014년 4월의 그 참혹했던 사건은 소설가 김영하의 삶과 소설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작가는 그 기점에 놓인 작품이 ..
강아지 나라에서 온 편지 | 다나카 마루코 | 자음과모음 어느 날 강아지 나라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당신에게 온 편지입니다. 어서 열어 보세요. 강아지들이 모여사는 나라. 그곳에선 모두가 멋진 옷을 입고 두 발로 걸으며 직업을 갖는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자신의 생각대로, 바라는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며, 그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강아지 나라에서 온 편지』는 강아지와 주인 사이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여섯 편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덧붙여진, 여섯 마리의 강아지들이 보낸 온 편지는 픽션이나, 남겨진 주인의 마음을 따스하게 위로한다. 犬が死んだとき、あんなに悲しんではいけなかったんだ、そうしたら悲しい色がここの空に気持ちに流れてきてしまう。実感としてそう思えた。楽しかったね、時間を共有できて、いっしょに歩けて、ほんとうによかったね、そういう気持ちだけで..
마법사들 | 로맹 가리 | 마음산책 베네치아 광대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 기록한 모험, 농담, 사랑의 지독한 성장담 『마법사들』은 18세기 말,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떠나 러시아로 이주한 광대 집안의 이야기다. 당시 유럽 사회를 휩쓸던 변혁의 물결 안에서 살아가야 했던 자가 일가와 그 집안의 마지막 후손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인 포스코 자가의 성장과 모험을 주로 한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겨우 세 살 반 많은 새엄마 테레지나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유년기를 넘어 평생에 걸친 단 하나의 사랑으로 간직하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그가 테레지나와 함께 보냈던 날들을 회고하며 그 시간들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 중 설레도록 근사한 대목이 있어 옮겨 본다. 사는 기쁨으로 대기에 풍선이 한가득 날아오르는 듯한 시간이었고, 말 한 마디, 웃음 한 도막, 심작박동 한 ..
무경계 | 켄 윌버 | 정신세계사 인간의 본질과 깨달음의 지평에 관한 가장 정교한 통찰 "나는 누구인가?" 청소년기 자아 정체감 형성과 맞물려 시작된 끝없는 존재의 탐구에도, 이 원초적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사고를 위한 의식의 틀에 단단히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닌지, 혹은 그것 자체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지도 모르다는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무엇인가가 그것에 이르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음에 분명해 보인다. 저자 켄 윌버는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을 통해 이에 대한 실마리를 풀고 있다. 『무경계』의 기본 메시지는 제목이 말해주는 그대로, 당신 자신의 근원적인 자각과 정체성 자체에는 본래 아무런 경계도 없다는 것이다. 당신의 근원적인 정체성을 물질로부터 몸, 마음, 혼, 영에 이..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 정희재 | 갤리온 외롭던 내가 가장 듣고 싶었기에, 외로운 당신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31가지 이야기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순간에도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괜찮다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할 필요 없다고, 잠시 내 어깨에 기대도 좋다고 건네는 진심 어린 위로의 말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작 그 한마디가 간절했던 순간에도 나는 혼자이기를 자처하는 경우가 대개였다. 고로 누군가의 위로는 애당초 있을 수 없던 셈이었고, 자연히 스스로에게 말이 많아졌다. 나라도 다독이며 응원해야 했으니까. 물론 더러는 외롭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건 차라리 주술에 가까웠다. 외로운 사람이란 걸 인정하는 순간 밀려올 아득함이 못내 두려웠던..
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임현 외 | 문학동네 # 01. 「고두(叩頭)」, 임현 인간에게 필연적이기 마련인 자기모순, 그 전형을 한 윤리 교사의 자기 옹호에서 읽는다. 오늘도 누군가는 용서를 구하기 위해 사과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용서하기로 한다. 오가는 사과와 용서 속에 얼마큼의 진실과 진심이 담겨 있을까. 혹여 용서를 받아내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도덕이고 정의이고 올바른 세계'(p.26)라 믿어왔고, 또 그래야만 할 우리의 민낯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글이다. 무슨 잘못을 진짜 하긴 했는지, 그걸로 미안한 감정을 가졌는지의 여부는 아무 상관 없단다. 핵심은 그런 말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뿐이거든. 나는 그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식적이라고? 진정성이라든가 진심 같은 말을 나는 전혀 신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