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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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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도하는 밤 | 이영제 | 가톨릭출판사 깊은 밤, 홀로 기도하는 당신에게 저의 기도를 보냅니다. 하느님의 손길이 당신에게 닿을 수 있도록. 교구 사목국에서 특수 사목을 하고 있는 이영제 요셉 신부의 『함께 기도하는 밤』. 청년 주보에 실렸던 글을 한데 묶어 출간한 책이라고 머리말에 쓰여 있다. 그렇다면 신앙에 대하여 청년들에게 전하고픈 혹은 상기시키고 싶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으리라. 과연 기대했던 바대로, 신앙생활 안에서 한 번쯤 마음에 품었던 생각들이었으면서도 흐지부지 흘러 보내고 말았던 이야기들과 조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욱이 신부님께서 마주했던 어떤 경험이나 체험 안에서 자연스레 풀어나가는 교리 이야기들이기도 해서 보다 친근하면서도 흥미로울 수 있었지 않나 싶다. 보태어 짤막한 글이 무색하게 의문문으로 맺어지는 물음표를 한참 바라..
나가사키의 종 | 나가이 다카시 | 페이퍼로드 원자폭탄 피해자인 방사선 전문의가 전하는 피폭지 참상 리포트 몇 해 전 나가사키에 간 일이 있었다. 원폭으로 인해 참혹했던 칠십여 년 전의 참상이 지금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이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풍광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일정의 마지막 날, 원폭 낙하 중심지를 비롯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에서 보낸 한나절은 이 도시에 잠들어 있는 큰 슬픔과 마주해야 했던 먹먹한 시간들로 기억 속에서 선명하다. 그렇기에 『나가사키의 종』의 저자가 진작에 우려했듯, 지난 2014년 아베 정부가 헌법 9조(평화헌법)의 전쟁 및 무력행사 포기, 교전권 및 군대 보유 금지 조항을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그 방향을 선회하는 해석을 하며 각의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 심히 안타깝고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 바다출판사 세상과 사람을 잇기 위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짐과 노력 입때껏 내가 만나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선은 늘 평범한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이 사회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음 직한 일들을 보여줘 왔다. 그 안에서 나는 개인의 사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세간의 선입견 혹은 소외와 무관심, 방관이 어쩌면 한 사람이 짊어진 짐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부족하고 미숙한 면모들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 지점이 고레에다 감독의 세계관이 가지는 독자성이라고 생각한다. 보여주지만 쉬이 판단하지 않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성숙한 자신, 더 나은 사회를 희망하게 만드는 일……. 이를테면 평온한 일상의 가운데 던져진 돌..
명상 살인 | 카르스텐 두세 | 세계사 죽여야 사는 변호사 누구도 이런 살인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비요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이야기가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한 모든 일은 최선의 행위였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맞추려 집중을 택한 자의 논리적 결과였다.”(p.10)라고. 처음 읽었을 때는 흘러가듯 지나쳤지만,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지금에서 다시 읽은 이 문장은 한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인 동시에, 실은 우리 스스로 역시 일상 속에서 자주 범하고 마는 어떤 나약하고도 비겁한 지점에 대한 순간을 상기하게 했던 이유였을까. 어찌 됐든 나는 주인공 비요른을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순간의 감정에 그치지 않고 실행에 ..
먼 아침의 책들 | 스가 아쓰코 | 한뼘책방 인생이 그토록 많은 그늘과 그만큼의 풍요로운 빛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먼 아침, 스가 아쓰코를 사로잡았던 책들 어린날의 기억이, 그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던 책과 함께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되살아난다. 책 속의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순수했던 나날은 뚜렷한 신념과 균질한 사고에 한껏 매료됐던 시기를 지나, 가닿고자 했던 전 지구적 세계관에 대한 열망을 향해 나아간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곧잘 ‘책에 읽히고 있’(p.31)던 시기에 대한 아주 오래된 기억들 속의 것이다. 그럼에도 퍼즐 조각을 차근히 맞춰 나가듯 하나씩 끼워 나가는 일이 더없이 매끄러운 것은 ‘책’이라는 강렬하고도 명백한 매개물이 존재하는 까닭이지 않았을까.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일화, 자연과 가까이했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공지영 | 해냄 공지영 작가가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보내는 스물네 편의 편지 엄마는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자신이 경험하고 깨달은 인생의 가능한 모든 것들을 전하여 딸의 삶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하여 딸의 삶이 견고하고 단단해지기를, 순탄하기를 바라는 절실함이라고도 나는 이해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상 속에서 이러한 엄마의 딸 잘 되라는 말들은 잔소리로 둔갑해버리기 십상이다. 작가 공지영은 평소 인상 깊게 읽은 책의 구절을 통해 딸 위녕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편지로 대신한다. 엄마이기도 하지만 인생의 선배로서 딸의 고민을 헤아리고 때때로의 슬픔과 낙담을 위로하며 사랑과 행복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자신이 체득한 삶의 지혜를 풀어놓으며, “자, 오늘도 좋..
그리운 메이 아줌마 | 신시아 라일런트 | 사계절 "눈부시게 하얀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낡은 트레일러에서 나는 마침내 집을 찾았다." “메이 아줌마의 영혼인, 눈부시게 새하얀 바람개비 ‘메이’”(p.118)가 바람결에 돌아가는 걸 바라보면서 서머와 오브 아저씨는 무얼 생각하고 있었을까. 나는 기도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람개비처럼 메이 아줌마 역시도 훨훨 자유로이 날아가시기를. 이제 자신과 오브 아저씨도 그간의 슬픔은 묻어두고 대신 아줌마와 함께해서 좋았던 기억, 사랑만을 마음에 담아 꿋꿋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도 했으리라. 그리하여 오늘까지 흘린 눈물방울들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반짝이는 결정이 되어 산 사람들의 마음속에 고이 자리하게 될 것이라고도 나는 믿기로 했다. 이야기의 마지막, 클리터스는 축복을 내린다. “영혼의 소리가 담고 있는 ..
낮술 | 하라다 히카 | 문학동네 “어른에게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다.” 술을 곁들인 점심 식사는 이누모리 쇼코에게 ‘유일한 사치(p.44)’다. 밤새 돌봄이 필요한 이들의 곁을 지켜주는 일을 하는 그녀에게 한 끼 식사는 무사히 일과를 마친 것에 대한 수고의 의미이자 내일의 자신을 응원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메뉴를 신중하게 정하고, 음식 맛을 돋우는 적절한 술을 고르는 일은 단순해 보여도 그녀의 진심이 담겨 있다. 기왕이면 음식 본연의 맛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한 잔 낮술로 하루의 노고를 치하하겠다는. 그런데 실은 이것 말고도 한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혼 뒤에 아이를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슬픔과 상처, 그 무거운 짐을 그때만이라도 잠시 내려놓고 언젠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