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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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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았던 시간에 | 김소연 | 달 나 여기에 좀더 있으려고 해 일찍이 감탄해 마지않았던 『마음사전』의 ‘마음’ 낱말 정의가 한층 돋보였던 것은 시인 특유의 감수성과 예리한 통찰력에서 연유한다. 그렇기에 시인이 떠났던 여행에 뒤늦게나마 동행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모로 여행이란 감수성이 더해져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고 깊은 통찰력이 바탕돼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 마련이니, 시인의 여행길이 몹시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손에 넣은 여행 산문집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까닭인지 책장에 두고 어언 삼 개월이 흘렀다. 코로나(COVID-19)라는 전례 없는 어려움 속에 여행이 아득히 먼 일이 돼 버린 이유라고 치부하기에는 어찌됐든 나의 의지로 이 책을 손에 쥐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변덕..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 성녀 소화 데레사 | 가톨릭출판사 작은 꽃, 작은 붓, 작은 길의 영성 나의 세례명 데레사. 유아 세례를 받았기에 내게 선택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짐작건대 생일과 일치하는 축일을 가진 성인들 중의 한 분으로 정한 것이리라. 그렇기에 내가 세례명을 처음 자각했을 때는 어린 시절 주일학교를 다니기 시작할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곧이어 알게 됐다. 성당에 가면, 여기에도 저기에도 어디에도 데레사는 늘, 반드시, 꼭 존재함을. 그런 까닭에 어린 마음에 기왕이면 흔하지 않은 세례명이었으면 어땠을까, 철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데레사 성녀를 따르고 싶어 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을까. 더욱이 그 이름을 지닌 성녀는 나의 성인 리지외의 데레사뿐 아니라 아빌라의 데레사를 비롯, 여러 분이..
이것은 물이다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나무생각 어느 뜻깊은 행사에서 전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생각들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나이 든 물고기 한 마리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넵니다. “잘 있었지, 얘들아? 물이 괜찮아?”(p.9) 어린 물고기 두 마리는 잠깐 동안 말없이 헤엄쳐 가다가 결국 물고기 한 마리가 옆의 물고기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도대체 물이란 게 뭐야?” (p.10) 물에 대하여 가만히 생각해 본다. 아직은 세상 밖을 온전하게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린 물고기들이기에 애당초 그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는 일이란 쉽지 않을 터다. 사실 물은 그들에게 더없이 당연한 세상이어서 구태여 따져볼 일이 무엇 있겠는가. 그러나 나이 든 ..
새들 | 요시모토 바나나 | 민음사 “새가 너에게 무언가를 전하러 왔다면, 그건 엄마가 보내는 영원한 메시지야.” ‘조금은 불완전했지만, 흔들림 없이 함께였고, 즐거웠’(p.58)던 가족, 그러나 이제 남은 사람은 마코와 사가 단둘뿐이다. 다카마쓰 씨를 잃고, 사가의 엄마, 마코의 엄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난 뒤, 두 아이만이 오도카니 이 세계에 남겨진 것이다. 아직 다 성장하지 못한 여린 아이들이 감당해야만 했을 슬픔의 크기, 앞날의 막막함이 어땠을는지 가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일은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데에 있지 않았을까. 대학생인 마코는 배우로서 연극 무대에 서는 것으로, 사가는 빵을 만드는 일을 해나감으로써 각자의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면서도 쉬이 떨쳐버릴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서로가 있기에 버텨낼 수 있었..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움베르트 에코 | 열린책들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롭고 재미있는 통찰이 가득한, 움베르토 에코 유작 에세이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에 담긴 55편의 에세이는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을 향한 마지막 목소리여서 한층 귀히 여겨진다. 줄곧 냉철한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유쾌함이 묻어나는 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주는 까닭이다. 그는 많은 이야기들에 앞서 ‘사회적 유동화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p.15)라는 질문을 던진다. 유동 사회(Liquid Society), 즉 ‘근대의 근간이 흔들리고 허물어졌고, 그와 함께 확고한 기준점의 결여로 모든 것이 어느 정도씩 유동하는 상황이 생겨’(p,14) 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함께 나아갈 길에 대하여 모색할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
1984 | 조지 오웰 | 민음사 21세기, 고도의 정보화 사회에 던지는 조지 오웰의 경고 거대한 지배 체제하에 놓인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파멸해 가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디스토피아 소설 거대한 암흑세계에 발 디딘 기분이 참담하다.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며 검열과 세뇌를 일삼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잠시나마 상상해 본 것이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p.114)를 갈망하던 윈스턴 스미스는 결국, ‘행복한 몽상에 잠겨’(p.416)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p.417)히는 순간에 다다른다. 그것은 곧 영혼의 말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체제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저항하며 자유를 희망했지만, 함정에 빠져 거대한 지배 세력에 끝내 굴복하고 말았으므로. 그렇기에 ..
예언자 | 칼릴 지브란 | 책만드는집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현대판 성서 천재 시인이자 철학자인 지브란의 명상과 사색의 결정체 칼릴 지브란의 잠언 시집 『예언자, The Prophet』는 망망대해의 등대처럼 우리를 이끈다. 고향으로 향하기 위해 배에 오르려는 알무스타파에게 알미트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들에 대해 당신이 알게 된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소서."(p.13)라 청하고, 이에 알무스타파는 오르팔레스 사람들의 스물여섯 가지 질문에 답하여 준다. 그 이야기들은 삶 속 인간 존재가 마주하기 마련인 근원적 물음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한 까닭에 보다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인생길의 좋은 지침이 돼 주리라. 마음은 침묵 가운데 낮과 밤의 비밀을 아니니. 그러나 그대들의 귀는 마음이 아는 것을 들으려 애태우네. 그대들은 ..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 세계사 한국문학의 가장 크고 따뜻한 이름, 박완서 그가 남긴 산문 660여 편 중 가장 글맛 나는 대표작 35 작가 박완서를 떠올리면 단연 ‘한국문학의 어머니’라는 칭호부터 떠오른다. 여기에 더해, 내 마음속에서는 입담 좋은 할머니로 우뚝 서 있다. 단순히 물리적 나이차가 그즈음인 영향도 있겠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매몰되어 있을 적이면 늘 할머니의 너른 품, 때때로의 인간적인 모습에 친근함을 느끼곤 했던 까닭이다. 더욱이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격동의 시대, 그 생생한 이야기를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전해 듣고 싶은 작은 바람이 있었지만 허락지 못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허기진 부분을 문학이라는 울창한 숲이, 그 안에서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