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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책/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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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걷는 밤 | 유희열 | 위즈덤하우스 감성 뮤지션 유희열의 심야 산책 에세이 밤 풍경을 배경 삼아 걷는 일이 이토록 근사할 수 있음을 유희열의 『밤을 걷는 밤』은 알려준다. 요 며칠,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마음이 적잖이 동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나의 유년 그리고 청춘의 기억이 자리한 장소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헤매고 다니고 있음을 문득 알아챘을 때였다. 그러고도 나는 어느 밤, 늘 내리던 버스 정류장이 아닌 한 정거장 전에 내려 집으로 향하면서 차창 밖으로 스치듯 지나쳤던 밤 풍경의 익숙하지만 낯선 길을 걸어도 보았다. 가까이에 있어서 오히려 쉬이 지나치고 말았던 탓에 눈에 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살피면서 천천히…. 도시 소음에 가려졌던 풀벌레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계절이 선사하는 자연의 선물들을 새삼 발견하기도 하면서. ‘직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 줌파 라히리 | 마음산책 줌파 라히리의 작가적 모험 산문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영어를 사용하며 그것으로 집필 활동을 해온 지난날을 접어 두고, 이탈리아 로마로 이주하여 이탈리아어를 통해 자신의 삶 전반을 새로이 채워 나가고자 했던 나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을 때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 한다. 지금 경험하는 흥분과 열정이 계속되기를 꿈꾼다. 이탈리아어로 읽는 건 내게 그런 열망을 불러일으킨다.’(p.43) 라고 회고하고 있다. 이탈리아어에 대한 그녀의 진심이 절로 전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이뤄낸 작가적 명성을 뒤로하고 새 언어로 작가의 길을 재 모색하기란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리라. 그럼에도 그녀는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어내고 부단..
생쥐와 친구가 된 고양이 | 루이스 세풀베다 | 열린책들 나는 유독 고양이를 좋아한다 ‘우정’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름도 엇비슷한 막스, 믹스, 멕스의 종(種)을 초월한 서로를 향한 진심이 바로 그것. 누가 누구의 주인인 것이 아니라, 일상을 공유하는 가운데 기쁠 때는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는 함께 나누면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기꺼이 도움을 주고받을 수도 있는 그런 진실된 관계 안에서 새삼 우정의 참모습을 일깨우게 하는 것이다. 더욱이 ‘서로 마음을 열고 얼마나 따뜻한 마음으로 사느냐’(p.79)에 따라 우리 삶의 온도는 크게 좌지우지됨을 상기시키게도 한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울타리가 되어 준다면 덜 외롭고 덜 아픈, 그러나 더 즐겁고 더 행복한 삶을 기대할 수도 있기에 말이다. 진정한 친구란 무얼까, 떠올리게 만드는 루이스 세..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전하영 외 | 문학동네 # 01.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전하영 저 멀리 사라지는 두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나’는 스무 살의 자신과 연수 – 그리고 장 피에르 - 를 떠올렸으리라. …한참이 지나고 우연한 찰나에 조우하게 되는 지난날의 나와 그 주변부를 마주하는 일,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는 곳으로. 나를 길들이는 데에 실패한 거대한 시스템의 세계로’(p.56) 다시 향해야만 하는 운명이기에 그 일은 너무도 중요해 보이는 것일까. 가끔은 무언가 이야기 같은 것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내 인생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 p.55 # 02. 「나뭇잎이 마르고」, 김멜라 산에 올라 씨 뿌리는 일, 일명 마음씨 활동은 체라는 인물을 이해하..
이선 프롬 | 이디스 워튼 | 민음사 애정 없는 결혼 속에서 ‘낡은 폐선’처럼 살아가는 이선 프롬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억압해 버린, 우리 내면의 슬픈 자화상 소설 속 ‘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통해 그 자신이 여러 사람들에게서 전해 듣고, 직접 눈앞에서 마주하기도 한 이선 프롬과 두 여인(지나, 매티)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나’에게서 한 발짝 물러난 더 큰 액자 밖에서 이선 프롬이라는 인물의 감정선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된다. 이는 곧 마음속에 드리운 그림자를 가만히 응시하는 일이기도 할진대, 이를테면 삶 속에서 – 그것이 무엇이 됐든 간에 – 억압되기 마련인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과도 같으리라.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의심할 여지없는 타당한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희..
벨 에포크, 인간이 아름다웠던 시대 | 심우찬 | 시공사 셀럽과 스타가 탄생하고, 백화점과 루이 뷔통과 샴페인이 브랜딩의 태동을 알리던 인류의 전성시대 ‘르네상스 시대와 더불어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p.19)로 일컬어지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저자는 그 눈 부셨던 파리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때는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14년 이전을 말한다.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유럽을 너머 미국 등 전 세계에 걸친 사회∙경제적 구조에 변혁을 가져왔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따라 기술의 혁신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고, 그 안에서 사람들 마음속에 타오르는 소비욕을 전방위적으로 자극하는 시대로 나아갔다. 더불어 문화 예술이 꽃피는 시기이기도 했는데, ‘현실과 괴리된 고전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주변에..
여름 | 이디스 워튼 | 민음사 미국 문단에서 여성의 성적 열정을 다룬 최초의 본격 문학 열여덟 살의 소녀 채리티가 어엿한 여성으로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디스 워튼의 소설, 『여름』.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싱그러운 여름날 채리티 앞에 나타난 건축가 하니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숭고한 계절의 흐름은 때가 되면 여름을 보내줘야 하는 것처럼, 그녀 역시 마찬가지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결단한다. 자신을 산에서 데려온 후견인 로열과 미래를 함께하기로. 앞서 말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만남과 사랑, 헤어짐의 과정 안에서 드러나는 채리티의 심리적 성장에 있다. “모든 게 지긋지긋해!”(p.8)라며 불만하는 것으로 등장하던 소녀가 다른 여인과 약혼한 연인에게 오랜 고심 끝에 보낸 몇 줄 편지에는 그로..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유시민 | 돌베개 너와 내가 함께 써내려 갈 우리의 역사를 위하여 저자가 태어난 1959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한국현대사를 그의 주관적 시선으로 적고 있다. 사실 – 저자 역시 서문을 통해 밝힌 바 – 모든 역사는 주관적 기록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서 보인 지난날을 향한 관점이 비교적 공정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과거 사실을 바탕에 두고 그가 보고 듣고 느꼈던 주관적 경험이 보태어져 보다 실감 나고 흥미로우며 한편으로는 아프기도 한 과거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짚어 본 우리의 현대사는 그 어느 역사보다도 정력적이었고 치열했다고 본다. 크게 보수와 진보,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의 힘겨루기 안에서 반세기의 대한민국은 다방면에 걸친 놀라운 성장을 이루어 냈고, 이전보다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갔음은 다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