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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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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 | 길리언 플린 | 푸른 가장 짧고 가장 섬뜩하고 가장 강렬하다 수전을 믿어요, 나를 믿어요? 누구 말을 믿을 지는 아줌마 마음에 달린 거죠. 마일즈의 당돌한 물음이 당혹스럽다. 그것은 느닷없이 뒤통수 한 대를 갈겨 맞기라도 한 듯한 의식의 각성을 동반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진실의 진위 여부를 알아채고자 하는 노력조차 무의미하게, 이야기는 제 말만 하고 가차 없이 마침표를 찍고 있기에 한결 막막하기까지 하다. 물론 소설 속 ‘나’ 역시 혼란스러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외려 쉬이 마음을 결정한 듯 보인다. 어쩌면 그녀가 놓인 처지는 파헤쳐 진실을 아는 것 보다 이렇게 된 이상 마일즈의 말이 진실이기를,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사건에 일절 연루되..
제5도살장 | 커트 보니것 | 문학동네 부조리와 모순의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반전反戰소설 『제5도살장』은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학살로 알려진 드레스덴 폭격을 소재로 한다. 하지만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다룬 여느 반전(反戰)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보니것이 바라본 전쟁의 한가운데는 슬픔과 고통 대신 냉소와 풍자가 자리한다. 유머와 위트, 아이러니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모든 것은 ― 해설에 따르면 무려 백 여섯 번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 "뭐 그런 거지(So it goes)", 이 한 마디로 집약된다.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주인공 빌리 필그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시..
깨끗하고 밝은 곳 | 어니스트 헤밍웨이 | 민음사 "필요한 것은 밝은 불빛과 어떤 종류의 꺠끗함과 질서야." #. A Clean, Well-Lighted Place 귀머거리 노인은 밤늦도록 카페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로 인해 퇴근이 늦어지는 것을 불평하던 젊은 웨이터는 한 잔 더 달라는 노인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를 내보낸다. 함께 있던 나이 많은 웨이터는 동료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도 카페에 늦게까지 남아있길 좋아하는 노인의 마음에 공감한다. 마감 후 집으로 향하는 길, 나이 많은 웨이터는 불빛이 꽤 밝은 어느 바로 향한다. 그러나 제대로 닦이지 않은 스탠드를 보는 순간, 한 잔 더 권하는 바텐더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다. "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고 싶어." 나이 많은 웨이터가 말했다.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
숲 | 할런 코벤 | 비채 20년 전, 사람들은 그 숲에 비밀을 묻었다! 여름캠프가 벌어지던 20년 전 어느 날, 4명의 십대(마고 그린, 더그 빌링엄, 길 페레즈, 카밀 코플랜드)가 숲에서 사라졌다.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아이(마고 그린, 더그 빌링엄)는 숨을 거둔 채 발견된다. 그러나 나머지 둘(길 페레즈, 카밀 코플랜드)의 행방은 결국 찾을 수 없었다. 사건 피해자의 부모들은 캠프장 주인이었던 아이라를 상대로 관리 소홀을 문제 삼으며 소송을 시작하고, 거액의 합의금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그러나 실종된 카밀의 오빠이자 카운티 검사인 폴 코플랜드 앞에 20년 전 자신의 동생과 함께 사라졌던 길 페레즈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새로이 20년 전 사건을 파헤치며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해가는 과정을 그린 『숲..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 포리스트 카터 | 아름드리미디어 이 시대의 고전, 모든 세대를 위한 불후의 명작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체로키 인디언으로서의 삶을 영위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쓴 지은이 포리스트 카터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러므로 소설 속 화자이기도 한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로부터 불렸던 자신의 실제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자연 안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여러 마리의 개들과 함께했던 어린 시절의 일화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적고 있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가슴 뭉클한 한 편의 순수한 동화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연의 일부이기보다는 그 위에 군림하며 사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봤을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소설 속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
롤리타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문학동네 사랑 혹은 광기. 에로티시즘 혹은 포르노그래피 환희와 절망이 빚어낸 숨막히는 언어유희 책을 읽다보면 무의식 중에 이상한 고정관념에 빠져 골몰하는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책은 어떤 내용이든 간에 결국엔 마음에 새길 한 줄의 교훈은 있어야 한다 던가, 작가와 소설 속 등장인물을 연관 지어 생각하려는 경향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교훈을 목적으로 한 책도 존재하고,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자전적 책도 존재하기에 모든 독서에서 경계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의 경우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있기에 유의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소설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이지 않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 문학동네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주도한 리얼리즘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표작 (…) 내 단편들을 읽어주면 좋겠소.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준다면 더 바랄 게 없지. 이미 본 걸 다시 읽는 것도 좋을 거요. 전과는 다를 테니까. 이 책의 소용이 무엇이겠소. 내 생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거든. 누구나의 생이 그런 것처럼 그저 슬플 뿐이오. 내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작가가 되기를 열망했다는 것, 그래서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다는 것, 우리들 삶의 순간들을 단편과 시 속에 붙잡아두고 시대를 거듭해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것 정도요. 이 책을 통해 당신이 나와 좀더 친밀해졌으면 좋겠소. 그렇게 내 이야기 안으로 들어와 주기를 바랄 뿐이오.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가상 인터뷰 중에서 http://ch.yes..
파수꾼 | 하퍼 리 | 열린책들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파수꾼 | 하퍼 리 나는 파수꾼이 필요하다 지난주 수요일 『앵무새 죽이기』가 출간되고 55년 만에 전작이자 후속작인 『파수꾼』이 출간됐다. 그런데 책을 받아보기도 전에 애티커스 핀치가 인 byeolx2.tistory.com 나는 파수꾼이 필요하다 지난주 수요일 『앵무새 죽이기』가 출간되고 55년 만에 전작이자 후속작인 『파수꾼』이 출간됐다. 그런데 책을 받아보기도 전에 애티커스 핀치가 인종 차별주의자로 변절했다는 다소 의외의 소식을 먼저 전해 들었다. 흑인 인권을 위해 노력하던 애티커스의 모습이 워낙 강렬하게 남아 있던 탓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배신감마저 들었던 게 사실이다. 어찌 됐든 그렇다고 해도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고 싶은 마음에 첫 페이지를 펼쳤다. 알려진 바..